이를 통해 도시 엘리트들의 읽기·쓰기 능력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고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대 수메르어는 이미 수세기 전에 구어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부유한 바빌론 주민은 여전히 이를 공부하여 시와 학문을 이해했다. 또한 신전 예식에 필요한 일부 기도문과 성가 역시 수메르어를 이용했다. 그리고 법률 문서 등에서 수메르어가 널리 통용되던 함무라비 왕조 때와는 대조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데도 수메르어를 공부하는 것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 주는 강력한 도구였다. 누구나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사다난한 시기에 마르두크의 역할은 재해석되기 시작하여 바빌론 왕과의 관계가 영구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4 마르두크는 점차 단순히 ‘주인’(벨)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세상을 지배하는 독보적인 통치자로 인식되었다. 왕권은 더 이상 타고난 권리로 여겨지지 않고, 신이 바빌론의 왕으로 인정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바빌론의 새로운 왕위 승계 원칙은 부친에게서 아들로 왕권이 전수되는 아시리아 등 주변국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정치권력이 왕가에서 마르두크 신전으로 옮겨 가며 신전공동체가 정치적 주체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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