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정치적 지형은 함무라비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의 강대국인 엘람과 얌하드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다수의 군소 국가들이 이제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수사와 할라브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 바빌론 왕국의 영토는 페르시아만에서 북부 이라크까지 아우렀다.

고고학자 도미니크 샤르팽은 바빌론의 라르사 합병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바빌론의 문화적 영향력이 이후 2천 년 동안 중동에서 지속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라르사 궁정의 세련되고 교양 있는 인물들은 소박한 함무라비 궁정에 편입되면서 바빌론의 정치·종교·문화·문학·예술 등 다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바빌론’ 문화가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자료는 함무라비법전이다. 이 법전은 함무라비가 새로이 건설한 왕국의 통합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여 년 전 우르 왕국이 몰락한 뒤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던 이 지역의 도시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그의 전략에 있어 새로운 법규범의 도입은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었다. 함무라비법전은 각 도시국가의 수용과 안정을 보장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텍스트 첫 줄의 기록에 따르면 가장 높은 두 신 즉 신들의 주인 아누와 땅의 주인 엔릴이 함무라비를 통치자로 정하고, 바빌론과 마르두크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함무라비가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수도 바빌론이 새 왕국 내에서 명성을 떨치자, 바빌론의 도시 신 역시 신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를 통해 지역 신에 불과하던 마르두크가 서서히 전 세계의 독보적인 지배 신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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