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발생설 비판 - 과학고전시리즈 7
루이 파스퇴르 지음, 김학현 옮김 / 서해문집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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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설에 찬성하는 학자들은 만약 극소량의 보통 공기가 여전히 침출액 속에서 생물을 발생시킨다면 이 생물이 자연발생을 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극히 적은 양의 공기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다양한 생물의 포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된다. 이 주장은 확실히 요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만약 아주 다양해 보이는 하등생물의 종류가 실제로 다양하고, 따라서 서로 다른 포자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입증된다면 이 중안은 한층 일리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것은 사실처럼 보이나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100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 1895)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제목 그대로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 Spontaneous generation theory)에 대한 비판(批判)이다. 그리고 파스퇴르의 비판은 사변적(思辨的)이 아닌 과학적(科學的) 실험 비판이라는 점에서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의 비판철학과도 궤를 달리한다.

만약,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이 이론적 비판이었다면, 자연발생설이 반증(反證)되어 퇴출될 수 있었을까. 고대로부터 주장되어온 자연발생설은 현미경이 발명된 17세기 이후에도 모습을 달리하여 과학적 학설로 인정받고 있었다. 즉, 모든 생명체들은 사후에도 고유한 활력을 갖고 있으며 적절한 산소(공기) 등이 제공되는 등 조건이 맞는다면 새롭게 조직될 수 있다는 내용의 자연발생설은 기독교의 부활신앙과 결합되어 당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이러한 보편적 상식에 대한 실험적 비판 내용을 담고 있다.

게이 뤼삭(Louis Joseph Gay-Lussac, 1778 ~ 1850)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내용물이 무사히 보존되어 온 병조림의 공기를 분석하면 거기에는 이미 산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산소의 결핍상태는 동식물성 물질을 보존하는 데서 하나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p97)... 병조림의 내용물이 보존되는 비밀은 보통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원물질이 열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이지, 게이 뤼삭이 생각한 것처럼 산소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은 아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98

그렇지만, 실험적으로 자연발생설을 비판한 학자는 파스퇴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전 스팔란차니(Lazzaro Spallanzani, 1729 ~ 1799)와 쉬반(Teodor Schwann, 1810 ~ 1882)은 각각 자신만의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비판했지만, 실험의 한계로 인해 완벽한 논파에는 실패한다. 스팔란차니의 실험에서는 가열이 공기 상태를 변화시켰다는 반론이, 슈반의 실험에서는 해당 실험이 알코올 발효에서는 타당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실험 결과, 가열한 뒤 냉각시킨 공기는 끓인 고기즙을 변질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성과였다. 실험 결과는 스팔란차니의 실험에서 공기의 변질을 추정한 니담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으며, 또한 아펠의 병조림 원리와 알코올 발효에서의 산소의 역할에 관한 게이 뤼삭의 주장이 갖고 있는 오류를 밝혀 주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25

그러나 같은 실험을 반복한다고 해서 항상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플라스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너무 오래 담가 둔 경우에는 어떤 플라스크에서도 발효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면 강열처리된 공기를 넣은 플라스크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쉬반 박사는 밝히고 있다... 쉬반 박사가 실험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 발효도 부패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일으키는 원인은 적어도 대기 중의 산소만이 아니며 보통 공기 속에 포함되어 있고 열에 의해 파괴되는 어떤 종류의 원물질(原物質)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26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에 대한 반증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알코올 발효에 대한 쉬반 박사의 논리를 보완하는 한편, 그의 실험 결과인 비일관성(inconsistency)으로부터 자연발생설의 법칙성을 논파한 것에 있다. 파스퇴르의 실험은 법칙을 증명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발생설이라는 법칙이 타당하지 않다는 예시를 통해 법칙을 무너뜨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면에서 파스퇴르의 <자연발생설 비판>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무너뜨렸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파괴적인 이론으로도 보여진다. 그렇지만, 반례를 통해 법칙의 타당성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본문의 내용은 효과적인 과학적 반증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나(파스퇴르)는 점액 발효, 유산 발효, 낙산 발효, 주석산 발효, 사과산 발효, 요소 발효 등 모든 발효가 항상 유기체의 존재 및 그 증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단백질은 결코 효모 그 자체가 아니며 효모의 영양소에 지나지 않는다. 효모는 바로 유기체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35

지구상의 어떤 장소에서 채취하든 소량의 공기는 임의의 침출액 속에서 미생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p168)... 만약 자연발생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플라스크 안의) 액체는 (플라스크의 공기로 인해) 변질할 것이고, 변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변질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결과를 말씀드리면 이 플라스크들 가운데 몇 개에서는 미세동물이나 곰팡이가 결코 발생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본래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자연발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_ 파스퇴르, <자연발생설 비판>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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