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음, 송이루.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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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혁명/전쟁 같은 고난이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잘 헤쳐나갈 능력이 있으며, 이를 극복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모든 비참한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인류의 적응력과 창조력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당신과 나, 그리고 세계 질서는 커다란 도전과 변화에 직면하겠지만 인류는 보다 영리해지고 강인해져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번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60/760

레이 달리오 (Ray Dalio, 1949 ~ )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 The Changing World Order>의 내용을 거칠게 그리고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본주의 탄생 이후 헤게모니(Hegemony)를 장악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과 함께 각 시기별로 적절한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관점 등을 제시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장점은 전업 투자자의 관점에서 세계경제사를 조망한다는 점과 이로부터 독자들은 투자자의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전 세계의 모든 경제 체제를 다 겪어 보았고 그 결과 돈을 벌어 저축하고 이를 자본시장에 투입하는 것(즉 자본주의)이야말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동기이며, 자원을 배분하는 수단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불공정한 빈부의 격차와 기회의 박탈을 유발하여 여러 가지 역효과를 낳고, 불경기와 호경기가 반복되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날 각국의 정책입안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등과 안정을 해치지 않고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 체제를 구현해서 생산성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139/760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내용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전체적인 본문의 틀은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 1930 ~ 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의 틀을 따르고, 저자만의 데이터 분석이 주를 이룬다. 세계체제 내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와 같은 주제라 할 수 있지만, 도출되는 결론은 사뭇 다르다.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지적한 자본주의의 본성 - 독점 monopoly - 문제에 대해 달리오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대자본가의 입장에서 적절한 투자 기회를 강조하며 이러한 기회와 혁신을 통해 지난 500년의 발전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저자의 관점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과연, 어제까지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줄 수있을까. 기후위기, 인간소외 등의 현대사회와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이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는 이 압도적인 부와 권력이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명나라의 황제는 해외 원정을 중지하고 문호를 닫아버린 후 쾌락에 빠져 관료와 환관에게 정사를 맡겨버렸다. 결국 내부 권력투쟁과 부패가 만연해 국가 기반이 취약해지고 군사력도 약해졌다. 실용적인 학문 연구와 혁신은 제쳐둔 채 탁상공론에 몰두했다. 이런 이유로 유럽과 비교해서 중국의 쇠퇴가 가속화된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5/760

저자는 이와 함께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다른 세계 국가들이 주변부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다분히 유럽 중심적으로 간단하게 해석한다. 저자는 명(明)나라의 쇠망을 쇄국정책과 내부부패 문제로 돌리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명나라 멸망 전후의 동북아시아 상황 - 만주족의 등장, 임진왜란, 왜구 문제 등 - 에 대한 고려 없이 혁신과 진취적인 정신이 없이 향락에 빠져 나라가 망했다는 분석은 저자의 분석이 과연 얼마만큼 정밀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과 마야 제국의 멸망에는 유럽의 침략 이전에 이들 제국과 주변 부족간의 대립, 천연두 등 전염병의 유행 등 복합적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가 ‘혁신- 비혁신‘ 이라는 단순화된 기준으로 세계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책을 읽으며 드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멕시코에 있던 아스테카제국(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은 당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인구가 많았다)과 남미에 있던 잉카제국이 가장 컸다. 그러나 곧 유럽의 침략이 시작되어 두 제국이 멸망한 후 새로운 식민지가 탄생하고 276년 후에 미국 건국의 씨앗이 뿌려졌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336/760

이러한 이유로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서술된 세계사관련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자본주의적인 단순한 기준으로 바라본 세계사. 이러한 관점의 한계는 저자 자신이 바로 성공한 투자가 때문일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투자적격성 여부를 판단하고자 하는 자본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사 그리고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 이것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가 담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독자들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통해 역사적인 통찰을 얻으려 한다면 많은 한계가 있지만. 대신, 자본가, 투자자의 시각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일정 부분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진다...

마찬가지로 더 이상 경화로 이자를 지불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부채와 채권자산이 점점 커진다는 면에서 화폐/신용/자본시장의 사이클도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다. 항상 그랬듯이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채권자산을 팔고 다른 자산을 구매하려 하지만, 통화량과 자산 가치 대비 이미 너무 많은 채권자산이 시장에 풀려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이 되어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가 발생하면 통화 공급 주체는 더욱 많은 돈을 찍어낸다. 이 사이클은 수천 년간 본질적으로 같았다. 국내 질서와 혼란, 국제 질서와 혼란의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_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 p4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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