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 와서는 헌법 9조의 명문 개정이 없이,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았는데도 타국 간의 전쟁에 참가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평화헌법이 왜곡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180도 전환을 감추는 키워드가 된 것이 ‘적극적 평화주의’였다.

원래는 오자와 이치로가 전수방위를 독선적인 ‘소극적 평화주의’, ‘일국 평화주의’라고 규탄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대치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정의가 없기 때문에 자칫 그 내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제멋대로 ‘평화주의’의 일종이라 자칭하면서 헌법 해석을 변경해버리면 이에 따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일본에서의 역사수정주의의 고양은 바야흐로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복고적국가주의 경향이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니라 해도 야스쿠니 사관에 대한 공감이나 찬동이 해외에서 얻어질 전망은 전무하며 금후 일본이 고립되어버릴 단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경제 정책이나 안보 정책의 ‘개혁’ 면에서 아직 일본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뒤처져 있으며 불충분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국내적으로 보면 이미 격세지감이 솟구칠 정도로 이러한 분야에서도 일본은 이미 우경화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아직 ‘보통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냉전의 종언과 함께 55년 체제의 보혁 대립이 해동되자 정당 시스템의 유동화를 거쳐 소선거구제의 작용에 의해 양대 정당제가 등장하고 유권자들에 의한 정권 선택을 통해 신우파 전환이 강화시킨 국가권력에 대한 체크 & 밸런스 기능이 행해질 거라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대체정당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던 민주당의 붕괴에 의해 전후 한 번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정치 시스템이 밸런스를 상실하고 수상관저에 집중된 거대한 권력만이 고삐 풀린 형태로 신우파 통치 엘리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지금 그것이 심지어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좀먹는 반자유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도에 넘치는 역사수정주의로 자칫 일본의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의 현실이지 않을까

두 번째는 리버럴 세력이 신자유주의와 결별하는 것이다. 기업주의나 이기적 욕망이나 정념 추구를 정당화하는 도그마에 빠진 신자유주의는 실은 자유주의도 그 무엇도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이 초래한 정치 경제의 과두 지배는 폭력이나 빈곤, 격차 등 오늘날 개인의 자유나 존엄을 위협하는 최대 원인이 되고 있다.

신우파 전환이 시간을 들여 파괴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제도들을 다시금 만들어 세우는 동시에 리버럴 세력이 신자유주의 도그마와 결별하고 좌파 세력이 자유화·다양화를 한층 추진함으로써 민중적 기반을 넓혔을 때, 비로소 리버럴 좌파 연합에 의한 반전 공세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검찰청이 주도하고 매스컴이 부채질했던 ‘정치와 돈’의 문제는 야당 시절부터 거의 일관되게 민주당만을 계속 뒤흔들었고 하토야마가 수상을 사임하는 한 요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오자와의 처우를 둘러싸고 민주당을 완전히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신자유주의든 국가주의든 실제로는 이미 간판이 다 떨어져 버렸다. 이미 트랜스내셔널한 엘리트들에 의한 글로벌한 과두 지배가 국민 국가를 공허하게 만드는 현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지금, 금후 반미 복고주의에 의해 일본을 더더욱 ‘되찾자’라는 목소리가 우경화에 박차를 가해갈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대로 대체정당 없이 신우파 연합의 폭주가 계속된다면, 우경화의 다음 스테이지는 대미 추종 노선으로는 도저히 억누를 수 없을 데까지 복고주의적 국가주의 정념이 분출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조건은 선거제도의 재검토, 즉 소선거구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개혁이다. 애당초 일본에서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경위를 보면 의도적으로 사표가 많은 제도를 만들어 정당제 과점화를 ‘양대 정당제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고의적으로 과점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권자와 정당 정치가의 관계를 자유 시장에서의 매매에 비유하는 유추analogy는 처음부터 파탄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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