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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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체제가 사회통합의 시대가 되기 위해서도 수구세력과의 격돌이 일단 불가피하다는 나 자신의 생각과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을 바탕으로 소통하고 합의하자고 해도 절대 안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떠나 오로지 자기 이득만 지키려는 '수구'의 특성 아니겠는가. _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p207

백낙청(白樂晴, 1938 ~ )의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는 저자가 주장한 '2013년 체제'에 대한 반성과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변혁기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의문이 담긴 책이다. 2012년 대선을 새로운 변혁의 원점으로 삼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와 달리 박근혜의 당선은 '2013년 체제'론에 대한 반성을 가져온 반면,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의 당선은 '촛불혁명 이후의 과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시민참여'의 가장 큰 몫은 대화와 교류를 거부하는 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갈아치우는 일이다. 이 기본적인 책무를 우리는 촛불대항쟁을 토해 훌륭하게 이행하였다. 남은 과제는 정권을 잃었을 뿐 여전히 사회의 각종 고지에 포진하고 있는 세력을 촛불시민과 촛불정부가 힘을 모아 제압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정부와 대통령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시민들 스스로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핵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혜를 선보일 때가 되었다. _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p451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서 저자는 촛불혁명을 움직인 시민참여라는 거대한 힘에서 일찍이 2008년 제기한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 평화'라는 삼중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한다. '근대적응'과 ' 근대극복'이라는 근대의 이중 과제가 냉전 이후 변화된 세계체제와 직결된 것이라면, 한반도 평화는 분단체제와 세계체제 문제에 함께 걸쳐있는 과제다.

'근대의 이중과제'론, 곧 근대적응(adapt to modernity)과 근대극복(overcoming modernity)을 이중적인 단일과제로 추지한다는 논의는 추상수준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p108)...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그 실천방법을 고정하기는 어렵다. 주어진 현실에 굴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최소한의 적응조차 못해서 그 현실의 극복에 실패하고 마는 결과를 어떻게 피할지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_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p136

우리에게 주어진 고차방정식(高次方程式)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임기 초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높은 기대를 불러왔지만, 이후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수구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오히려 파탄으로 이어진 지금의 상황은 마치 2016년 촛불혁명 당시 뒤늦게 읽었던 <2013년 체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참여 통일운동의 그 방면 상황은 어떤가? 6.13지방선거로 반촛불 수구정당에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린 이후로 운동이 오히려 소강상태로 접어든 느낌이 짙다. 그 원인은 크게 두가지라 생각된다. 하나는 문재인정부가 적폐청산과 남북관계 개선에서 이룬 성과에 비해 스스로 제1목표로 설정한 일자리 창출 등 민생경제 분야의 성적표가 실망스럽다는 점이다(p323)... 남북경협은 비록 미국의 대북제재로 지체되고 있지만 그 전망은 여전히 밝아 보인다. 반면에 국가의 조세권과 입법권을 행사하는 문제에서는 집권세력의 지혜와 의지가 모두 불확실하다. 바로 이것이 시민참여 통일운동의 국내전선이 소강상태에 빠진 둘째 원인이다. _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p3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는 <2013년 체제 만들기>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던 '시민' 그리고 '우리'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 <2013년 체제 만들기>에서는 총선신리, 입법부 장악 등 주로 정치권의 변화가 언급되었다면, 이제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서는 나라 주인들의 참여와 함께 한 걸음씩 나가자는 내용이 말해진다. 어쩌면 당연하고 작은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과제가 정치인의 것이 아닌 시민들의 것이라는 깨달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거대 담론과 언제 실현될 지 모르는 추상적인 비전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말해질 수 있다는 것. 무위(無爲)가 위(爲)가 될 수 있음을 어두운 시대에 실감한다...

6.15 공동선언의 묘미 중 하나, 지혜로운 점 중에 하나는, 제1단계로 연합제든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 그 어름에서 뭔가 하나만 한다는 것만 명시하고 그 후에 뭘할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첫째는 그 후에 뭘 할지를 미리 얘기하려면 합의가 안 됐을 거고요. 또 하나는, 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참여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거 그때 가서 우리가 정하면 됐지 왜 정상들이 다음에 뭐 하고 뭐 하고를 다 정해놓느냐, 이게 그야말로 민주시민, 주권시민의 태도 아니겠어요? _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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