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과정에서 드러난 최초의, 그리고 막중한 오류 발견의 사건은 간행된 『동경대전』의 모든 판본이 ‘목판본’이 아니라 ‘목활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여태까지 전제해왔던 많은 상념(常念)이나 논리적 전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서지학 전문가들의 눈에는 인쇄과정을 캐 들어가지 않아도, 인쇄된 책만 가지고도 그것이 목판본인지 목활자본인지를 쉽고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이것은 ‘주장’의 테마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scientific fact)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동학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학식이나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인간 수준’의 문제이다.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수운과 해월의 소박한 진실을 몸으로 느껴볼 수 없는 자들이, 학설이라는 것을 만들어 우겨대는 조잡하고 초라한 현실로부터 우리는 하루속히 탈피하여 동학의 본래정신을 웅혼하게 재건해야 한다.
서양의 종교는 대체로 ‘초월적 절대자의 존재성’을 전제하고 그 존재에게 나의 운명을 맡기는 절대적 복속을 ‘신앙’(belief)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동학은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하느님 자체가 세계와의 관계에서 조작적인 개입〔爲〕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은 세계생성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격적인 존재(Being)인 동시에 철저히 비인격적인 생성(Becoming)이다.
수운에게 있어서 ‘도통의 전수’라는 것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추상적이고도 상징적인 의발의 전수가 아니고, 매우 구체적인 물리적 사명이다: "내 원고를 한 글자 오석(誤釋)이나 변형이 없이, 있는 그대로 인쇄하여 세상에 유통시켜라." 이 사명을 받은 자가 경주 동촌 황오리(皇吾里)에서 태어난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 1827~98.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을 당해 72세의 나이로 사망함. 최시형時亨은 1875년부터 쓴 이름)이다
그런데 동학 경전은 타 종교 경전과 견주어 말할 수 없는 유니크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케리그마’(Kerygma)의 필터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운과 해월의 만남은 무극대도의 필연이었고, 조선민족의 행운이었고, 전인류의 서광이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 언약은, 순결한 동학의 언어와 정신을 어떠한 케리그마의 왜곡도 침투할 수 없도록 그 원모습을 후세에 전하는 사업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수운은 죽으면서도 해월에게 ‘고비원주(高飛遠走)’를 명했다. 그의 저작원고를 등보따리에 지고 빨리 멀리멀리 도망가라는 훈시였다. 추상적인 메시지가 아니었다. 해월은 수운의 수형(受刑)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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