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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공화국으로 ㅣ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칸트의 평화론은 국제법이나 국제정치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공화국은 칸트의 역사철학 근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p223)... 각국에서 일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국가들을 '위로부터' 봉(封)함으로써만 단절을 면합니다. '아래로부터'와 '위로부터'의 운동의 연계에 의해 새로운 교환양식에 기초한 글로벌 커뮤니티(어소시에이션)가 서서히 실현됩니다. 물론 그 실현은 용이하지 않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 p225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은 <세계공화국으로>를 통해 현재 인류가 직면한 과제 전쟁, 환경파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길이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영원한 평화>에서 제시한 '자연의 계획이 뜻한 인류의 완전한 연합'으로 가는 길임을 말한다. 그리고 쉽지 않은 그 길을 가기위한 여러 난제들과 해결방안이 본문의 중심을 이룬다. 그렇다면, 세계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는 무엇인가.
국민국가는 세계자본주의 안에서 그것에 대응하며 또 그것이 초래한 모순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본제경제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대립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네이션은 공동체와 평등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자본제가 초래하는 격차를 해결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그것을 다양한 규제나 세(稅)의 재분배에 의해 실현합니다. 자본제경제도 네이션도 국가도 각각 다른 원리지만, 여기서 그것들은 서로 보충이라도 하듯 접합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자본=네이션=국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 p16
고진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Cerberus)처럼 '자본=네이션=국가'의 구조로 이같은 어려움을 설명한다. 자본(資本)이 추구하는 독점을 통한 이윤, 국가가 갖고 있는 중앙집권적 권력은 근대민족주의가 제시하는 네이션(nation)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교집합을 갖는다. 자본의 이윤극대화라는 지대 추구는 국가의 안정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한 권력과 충돌할 법도 하지만, 이들은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이같은 서로 다른 체제의 공존(共存)이 가능한 것은 바로 상상속의 공동체 '네이션'을 통해서다. 네이션이 마치 보편종교와도 같이 이들에게 사상적 기반을 제시하면서 이들은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되어 시만과 국민에게 하나의 억압체로 작동한다. 고진은 이 구조가 존속하는 한 현재 인류가 직면한 과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나는 최초에 소위 네이션=스테이트란 자본=네이션=국가라고 서술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시민사회=시장경제(감성)와 국가(오성)가 네이션(상상력)에 의해 엮여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말하자면 보로메오의 매듭을 이룹니다. 즉 어느 하나를 없애면 무너지는 매듭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 p180
그렇다면, 이들 보로메오의 매듭을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Magnus, BCE 356 ~ 323)가 끊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만드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부분에서 고진은 프롤레타리아의 양면성(兩面性)에 주목한다.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프롤레타리아.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잉여인력으로 화폐와의 교환과정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만, 소비(유통)과정에서 노동자는 화폐를 가진 소비자로서 매출을 좌우하는 주역이 된다. 심지어 그는 주식시장에서는 회사의 주인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 1명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가 가입한 연기금펀드는 자본위에 군림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진은 생산관점이 아닌 소비관점에서의 변화를 말한다. 그리고, 그 같은 변화로 국가를 움직일 수 있다면 이상적인 세계공화국으로의 길은 열릴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유통과정에서 소비자로서 나타납니다. 그때 그들은 자본에 대해 우월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p161)... 소비자란 프롤레타리아가 유통의 장에서 나타났을 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 운동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고, 또 그와 같은 것으로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 p162
<세계공화국>에서 고진은 프롤레타리아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는 것으로 생각된다. 큰 틀에서 보자면 고진은 근대가 의미하는 이전 시대와의 단절의 극복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근대 이전의 언어와 근대 이후의 언어가 달라지고, 시니피앙(Signifiant)과 시니피에(Signifie)가 분화하며, 민중과 그들의 대표가 나뉘면서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 공화정의 뜻하는 바가 달라지면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새로운 것이 이들을 대체하는 과정이 근대화의 큰 흐름이었다면, 이를 극복하고 본연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세계 공화국으로 가는 큰 방법론이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이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른 책들 <트랜스크리틱>, <역사와 반복>, <네이션과 미학> , <세계사의 구조>를 통해 더 깊게 들어가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마르크스가 생각하기에 대표하는 자(언설)와 대표되는 자(경제적 계급들)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근대국가를 특징짓는 보통선거에 의한 대표제(의회)의 특질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계급들이 자신들의 원래 대표에 등을 돌리고 보나파르트에게서 그들의 대표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 p135
우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프랑스혁명에서 주창된 자유/평등/우애는 세 가지 교환양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자유는 시장경제에서의 상품교환, 평등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 우애는 호수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본=네이션=국가로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 P189
자본과 국가 중에 어느 쪽이 근원적인가라는 물음은 우문(愚問)입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기초적 교환양식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또 상호의존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쪽이 다른 쪽을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국가 없이 자본주의는 없으며, 자본주의 없이 국가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가와 자본의 ‘결혼‘이 생겨난 것은 절대주의 국가(주권국가)에서입니다. 제국주의 문제는 그곳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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