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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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에서 서구 과학 기술은 오로지 군사기술 측면에서 습득되기 시작했다. 주된 학습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술, 즉 군사기술에 있었고 과학은 기술 습득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학습됐다. 일본인들은 근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사회사상과 정치사사이 아닌 과학을 통해 인식했다. 그 과학은 증기로 움직이며 강력한 대포를 갖춘 군함, 다시 말해 군사기술로 구체화됐던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1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降, 1941 ~ )은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에서 일본 과학기술의 동기와 기원, 근대화와 군국화 과정에서의 역할, 전후 과학기술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의 서양 과학(科學) 수용은 오로지 군사력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이외 다른 분야에서의 발전은 부작용(side effect)에 불과하며, 근대 150년 체제의 처음과 끝은 '군사력으로서의 과학'으로 정리된다.

일본 현대사 연구자 존 다우어는 "쇼와 시대의 마지막 몇 년간에 이르면, 민수 목적으로 개발된 일본의 고도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전용한 여러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군산복합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세계 유수의 군사적 액터로서의 잠재 역량을 비축할 만큼의 눈부신 기술적 성과를 달성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다우어 2001) 일본인 스스로가 깨닫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하는 척해도 외국 연구자는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14

대표적인 사례로 소재, 장비, 부품과 관련한 일본의 중소기업을 들 수 있다. 기술집약적인 일본 중소기업들은 세계화 시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Supply Chain)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지난 2019년 일본의 대한(對韓)수출 규제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일본 지방 자치 재정에 있어 관광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일본 제조업의 탄생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일본 메이지 시대 기계공업 발전은 군의 근대화가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입된 최신예 플랜트의 저변에 재래의 의욕적인 직인들이 수입된 기계를 모델로 인력이나 수력 구동, 목재 내지 일부 금속제의 비교적 저렴하고 재래 직인이 사용하기 좋은 양화 洋和 절충의 기계, 또는 비교적 단순하고 소형화된 모방품을 만들어낸 데 있다. 또 이런 국산 기계 제조 혹은 수입 기계 부품 제조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이 지방도시에 속속 생겨난 것에 의해 달성됐다. 이 점은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109

저자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통해 군사 목적의 과학에 매우 비판적이다. 1968년 도쿄대의 전학공투회의 대표로 투쟁을 이끈 저자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저자의 전작(前作)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을 떠올린다면 책의 결론이 군국화되는 일본에 비판으로 끝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본문을 통해 무조건적인 평화운동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 경제적으로 평화로 가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패전 당시 미국 점령 정책의 기본방침은 일본의 완전한 비군사화였고 배상 청구도 그에 따라 엄중해 "만약 실행된다면 일본의 잠재적 군사 생산 능력은 뿌리째 뽑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48년(쇼와 23년) "미국의 대일정책은 배상보다 '경제 안정'으로 크게 변경"됐고, 그 결과 "잠재적 군사공업의 대부분은 파괴와 철거를 면하게 된" 것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04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일본의 원자력 발전을 단순한 에너지 산업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유사시 즉각적인 핵무장을 위한 예비 핵무장을 추진하는 현재 일본의 분위기 안에서 그는 1940년대의 총력전 체제의 연장을 읽어낸다. 그리고 이를 비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한 상태로 일본을 만들어둬야 한다는 '잠재적 핵무장' 노선은 "모든 산업 능력은 잠재적 군사력이다"라는 예전 총력전 사상을 답습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술적으로도 극히 곤란하고 초거액의 경비를 요하는 핵연료 재처리와 중식로 건설에 일본이 계속 집착해온 이면의 이유이자 정체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이 추진돼온 배경이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347

향후 전쟁이 총력전이 되면 평시의 산업 생산 능력과 연구개발 능력은 잠재적 군사력을 뜻하고, 평시부터 능력을 높여 전시에 국력을 얼마나 유효하게 사용하는지가 전쟁승리의 조건이 된다. 바꿔 말하면 평시란 다가올 전쟁의 준비기간이고, 평시 생산 능력의 향상과 자원 비축, 과학연구와 기술 개발은 전쟁 준비의 의미를 띠게 된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188

역사학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지적한 것처럼 "만주 땅에서 시작된 총력전 체제는 전후에도 모습만 바꾼 채 살아남아 고도성장을 준비했던 것이다. (고바야시, 2004)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81

독자들은 본문을 통해 근대화 과정의 도식 중 일부 '자본-과학-군사력'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빚어진 비극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삼전도에서와 같은 치욕을 자초하고 모든 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잔인한 2023년 3월의 현실에서, 일본의 근대화 역사를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읽게 된다...

그 후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국내 노동자의 다수가 전쟁에 동원돼 노동력이 한층 부족해지자 강제연행으로 끌어모은 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연합군 포로가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일을 강요당했다. 조선인이 가장 많아 1939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72만5,000명이 연행됐다. (다케우치 2014년) 끌려온 조선인들이 배치된 산업은 주로 석탄광업, 금속광업, 토목건축업, 제강업이며 이 중 석탄광업이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그리고 "광업기업에 송출된 조선인은 탄광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_ 야마모토 요시타카,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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