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 어떤 고상한 주장을 떠들든 삶을 지탱하고 전진시키는 근본 원리는 힘, 힘의 느낌, 힘의 느낌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을 니체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상해지고, 고귀해지고, 우월해지려는 인간의 의지도 역시 힘의 원리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일까. 니체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1881년 8월 6일을 기점으로 하여 니체 사상의 삶이 그 전과 그 후로 나뉜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수의 숲을 걷고 있었다. 수를레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 옆에 나는 멈추어 섰다. 그때 이 생각이 떠올랐다."《이 사람을 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절 이때 떠오른 생각이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에서 ‘전 유럽적 사건’이라고 지칭한 ‘동일한 것(동일자)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니체의 나머지 삶은 이 사상을 해명하는 데 바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원회귀 사상이 니체의 삶과 사유에 끼친 영향은 심대했다.

이 메모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장을 뽑아내면, "오, 사람아! 너의 삶 전체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풀이하여 다시 거꾸로 세워지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끝날 것이다"가 될 것이다.

영원회귀 체험 이전에 출간된 《아침놀》이 불완전한 책으로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 책을 써서 영원회귀 사상을 제대로 알려보자. 그런데 이 과업을 떠맡게 되는 것이 1883년부터 쓰게 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니체는 그보다 먼저 다른 책을 써 《즐거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것은 니힐리즘(허무주의)의 도래다. 신이 사라지면 신을 근거로 삼아 성립됐던 가치들이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삶의 의미를 지탱하는 토대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이다. 신의 죽음이라는 사태는 이렇게 인간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살아갈 힘을 부여했던 것의 사멸을 의미한다.

지배자가 되고 소유자가 되어라. 그게 될 수 없다면 도덕 따위에 매이지 말고 정복자나 약탈자가 되어라. 이 대목을 윤리적으로 순화시켜 읽기에는 니체의 문장의 강도가 너무 세고 강렬하다. 이 문장들에서 니체가 나중에 강조하게 될 ‘권력의지’를 읽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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