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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 & 기든스 : 세계화의 두 얼굴 ㅣ 지식인마을 1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부르디외가 사회 구조의 힘에 상대적인 무게를 두었다면, 그와는 반대로 기든스는 인간 행위의 능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면에서 차이를 드러 내고 있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123
오랫만에 지식인 마을 시리즈 리뷰를 정리한다.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는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 ~ 2002)와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의 사상의 대강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화(世界化 Globalization) 문제를 조명한다. 다만, 책이 씌여진 2000년대 초반과 코로나19 팬더믹을 거친 후 '세계화' 문제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탈(脫)세계화'가 이슈가 되는 상황에 어떻게 보면 책의 주제가 다소 낡은 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부르디외와 기든스라는 현대 사회학의 두 석학의 개념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둔다면 독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르디외가 사용하는 아비투스(Habitus)란 개념은 원리적으로 보아, 일정한 방향을 갖는 마음과, 일정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몸을 통합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사회 분석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위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95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에서 저자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사회로부터 반복적으로 주입되어 체화(體化)된 아비투스는 현 지배층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 주입되고 매스 미디어에 의해 수호되는 아비투스는 부르디외 논리의 시작점 '불평등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알파에 해당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부르디외는 세계화에 부정적이다. 세계화로 연결된 세계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을 구성하고 연결된 세계적인 네트워크는 세계적인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뿐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의 논거와도 연결지을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여러 페이퍼와 리뷰가 있으니 여기서는 넘기도록 하자.
아비투스는 에토스(ethos : 한 방향으로 지향된 습관)와 헥시스(hexis : 신체 훈련을 통해 체화된 행위 능력)가 하나로 결합된 것이라는 논리는 이 상황에도 부합하는 듯하다(p99)... 개인의 취향이란 글자 그대로 전혀 사회적이지 않은 사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아비투스는 특정한 개인의 몸속에 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동시에 그 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위상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p101)... 지배를 위한 다른 수단들의 경우,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지배자의 '일방적인' 의지가 발현된 것이라면 아비투스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공모(共謨) 관계를 통한 지배 질서의 재생산으로 봐야 할 것이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104
부르디외는 불평등한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기능하는 상징폭력을 보고 있다. 상징폭력은 "집단적 기대들과 사회적으로 주입된 믿음들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복종이라고 지각조차 되지 않는 복종들을 강요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물리적 폭력과 이데올로기적 폭력이 피지배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지배를 알고 느끼게 하지만 상징폭력은 지배에 대한 지각 없이 행사되는 것으로서 '오인된' 폭력이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112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가 사회적인 것으로부터의 압력이라면, 기든스는 인간의 내부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의 행위가 우연성의 결과물이라면, 사안이 갖는 문제점도 그 안의 장점과 단점의 조절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지며 이로부터 기든스는 세계화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표명한다.
모든 것을 걷어낸다면 결과적으로, 미국적인 세계화에 부정적인 프랑스인 부르디외와 영미권의 세계화에 긍정적인 영국인 기든스가 남겠지만 그보다는 이들의 관점 차이를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에서 찾고 정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Cogito ergo sum'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의 절대명제에 초점을 두는가,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인 개인의 경험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필연에 따른 비관적인 부르디외와 우연에 따른 낙관적인 기든스가 갈리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들의 이론은 상세하고 이렇게 거칠게 정리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너무 틀리지 않은 출발점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든스는 <사회학 방법의 새로운 규칙 New Rules of Sociological Method>(1976)와 <사회구성론 The Constitution of Society>(1984)으로 결실을 맺는데 이 저술들에서 기든스는 '구조화 이론 (theory of structuration)'으로 명명되는 자신의 사회학을 정립한다. 이 이론을 통해 기든스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학의 문제, 즉 '인간 행위와 사회 구조' 간의 대립적 관계를 해결하고자 했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123
기든스는 <사회구성론>을 통해 인간 행위의 최종적 결과물이란 인간의 의도적 행위와 의도되지 않은 우연성의 복합물이라는 독특한 논리를 전개했는데 이 논리가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첫째는 구조주의 대 실존주의, 객관주의 대 주관주의라는 사회학의 오랜 대립 구도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이고, 둘때는 근대성의 전 지구화가 초래한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약간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기든스가 생각하는 행위는 구조와 행위가 하나로 통합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_ 하상복, <세계화의 두 얼굴 : 부르디외 & 기든스>,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