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신의 기원 - 언어, 국가, 대의제, 그리고 통화 이매진 컨텍스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매진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민족 정신이나 심리 구조 따위의 상상물이 아니라 언어에서 출발하는 것은 불가결한 일이다. 다만 그것은 에크리튀르書記法인 언어네 주목하는 일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119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1941 ~ )은 <일본 정신의 기원>에서  '언어言語'를 기원을 찾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가라타니 고진 사상의 큰 흐름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자본재=네이션=스테이트'라는 그의 공식(?)은 다른 전집의 리뷰에서 보다 상세히 정리하는 것으로 하되, 그가 말한 언어에 보다 한정해서 살펴보자.


 나는 네이션의 기반에 시장경제의 침투와 함께, 도시 계몽주의와 함께 해체되었던 농업공동체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자율적이고 자급자족적이던 각 농업공동체는 화폐경제가 침투하면서 해체되고 동시에 그 공동성(상호부조나 호혜제)을 네이션(민족)안에서 상상적으로 회복한다. 그리하여 절대주의 국가 안에서 네이션이 형성된다. 그러나 네이션과 스테이트가 정말로 '결혼'하는 것을 부르주아혁명에서다... 자본, 국가, 네이션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통합된다. 그러므로 나는 근대 국가를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 capitalist=natiion=state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셋은 서로 보완하고 보강하게 되어 있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60


 언어는 국가나 네이션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문자언어의 경우는 반드시 정치적인 '가치', 즉 국가나 네이션과 관계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가치'에 관계하게 된다. 언어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런 가치들을 괄호에 넣어버리지만, 사실 우리는 그러한 곳에 살고 있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46


 간략하게 요약하면, 고진은 문자언어는 제국과, 음성언어는 국민국가(민족국가)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관계안에서 '근대화'는 과거 보편언어(라틴어, 한자와 같은 제국언어)와 음성언어의 일치, 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며, 고진은 이 지점에서 일본 정신의 근간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는 보편문자인 '한자漢字'와 음절문자인 '가타카나カタカナ'의 관계에서 상징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자를 훈으로 읽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로 외래적인 한자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미 한자를 훈으로 읽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일본어를 한자로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에서는 대조적이었다. 한자는 음만으로 읽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외부적이다. 그리고 문자를 읽고 쓰는 지식계급은 중국인에 필적하는 한문을 쓰려고 했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83


 예컨대 한자나 가타카나로 수용된 것은 결국 외래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받아들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외래 관념은 아무래도 한자나 가타카나로, 즉 표기에서 구별되는 이상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내면화되는 일도 없고 또 저항도 받지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저 옆으로 치워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는 외래적인 것이 모두 보존되는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85


 고진은 본문에서 일본어에서 한자가 훈(訓)으로 읽힌다는 것에 주목한다. 한자가 외부로부터 들어왔고,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외부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수용된다. 외래문자는 한자는 일본에서는 다른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어진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지만, 다른 한 편으로 신속하게 대체될 수도 있다. 이를 마루야마( 丸山 眞男, 1914 ~ 1996)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는 8백만이 넘는 신(神)을 가진 일본 신도(神道)와 고대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수입하던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유신을 통해 검은 머리 서양인으로 태도를 바꾼 그들의 역사가 증명한다.


 마루야마는 고대로부터 일본 사상사를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사상사에는 다양한 개별 사사의 좌표축을 형성하는 원리가 없고, 어떤 것을 이단으로 만드는 정통이 아니라 모든 외래 사상이 수용되고 공간적으로 잡거하며, 거기에 원리적인 대결이 없기 때문에 발전도 축적도 없다고 했다(p70)... 뭔가 확고한 원리나 자기가 있다면 밖에서 들어온 것과 충돌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일본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깥에서 온 것이 정착한다면, 그때는 그것들이 '변조되었을' 때뿐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72


 마루야마는 이러한 모호한 상태 -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 가 가능했던 것을 '천황제의 구조'안에서 파악한다. 하늘(天)의 자손인 천황을 앞세우지만, 실제적으로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일왕 아래 충성을 맹세한 쇼군에 의해 이루어진 막부(幕府) 전통. 책임이 실종된 모호함 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일왕은 일종의 방패막이에 불과할 것이다. 


 메이지 이후의 천황제는 일종의 절대주의 왕권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의 왕권인 것도 아니다. 천황제는 이미 국가이기 때문이다(p62)... 마루야마의 생각에 따르면 나치에게는 적어도 명료한 의지와 주체가, 따라서 책임이 존재했다. 나치에 비해 일본의 파시즘에는 명확한 정치적 주체가 없으며, 따라서 책임의식이 없다. 일본에서는 분명히 행동은 있었지만 아무도 그 주체가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마루야마는 그것을 '무책임의 체계'라 불렀고, 그런 시스템을 '천황제 구조'라고 했다. _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p69


 이처럼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정신의 기원>에서는 일본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일본 정신의 근원이 표현된다. 무책임의 체계안의 모호함. 이것이 일본인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외부에서 바라본 일본인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페이퍼로 넘기기로 하고, 간략하게 마무리 짓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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