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이 모든 것이 정말 가치를 무너뜨리고 역사를 되돌리는가? 언론의 자유에 일어난 일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의 어이없는 상황이 실은 배울 만큼 배웠다 생각한 민주주의를 다시금 심화학습할 기회임을 알게 된다. ‘시장의 자유’가 무자비한 양극화의 다른 이름임을 이미 경험하고도, 또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연설을 통해 극적으로 공허해진 그 위상을 재확인하고도, 자유는 여전히 강한 아우라를 지닌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도 언론의 자유라는 태도 앞에서 우리는 마침내 허울로서의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으며 진실의 추구가 민주주의의 더 기본적인 요소임을 날카롭게 깨우친다.

그러나 ‘윤석열 퇴진’을 정말 이뤄내고 말겠다는 사람이라면 퇴로를 열어주면서 퇴진시키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지, 다시 말해 촛불시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그렇더라도 누가 주도하여 조율하고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여러 가능성을 차분하게 연마해볼 일입니다. ‘언제’냐에 따라 ‘어떻게’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2022년의 촛불행동은 그 수위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혹한을 만났습니다. 결의에 찬 시민들이 이 고비를 넘겨 시위의 열기를 지켜낸다면 새해 봄쯤 최고조에 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기가 2023년을 넘어 총선국면으로까지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고 자칫 지루한 대치상태가 뒤따를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던 대로 생각하고 살던 대로 살아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분단체제는 힘이 셉니다.

그러나 우리 민중과 민족도 지혜롭고 끈질기며 힘이 셉니다. 조선왕조 몰락기에 동학이라는 새 사상이 나와서 이 땅의 후천개벽운동을 출범시켰고, 1894년의 동학혁명이 비록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패배했으나 민중의 각성과 헌신을 보여주었으며, 식민지 아래서의 3·1혁명 같은 변혁 노력이 분단시대에도 지속되어 드디어 남한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만 성취의 역사가 있습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촛불혁명의 와중에 변칙적으로 대두한 정권과의 대결이라는 비교적 선명한 목표를 갖게 된 상황입니다. 한반도와 인류사회 전체의 대혁신, 대전환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복된 시기를 사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촛불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에 직접 끼어들 틈새는 그 어느 때보다 협소하다. 그러나 내가 거듭 주장했듯이(예컨대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11장 「시민참여형 통일운동과 한반도 평화」) 통일과정에의 시민참여라는 게 북미관계·남북관계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시민참여 중에서 최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정권을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쫓아낸"(같은 책 284~85면) 2016~17년의 촛불대항쟁이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