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주는 것은 믿음이지, 믿음 뒤에 있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다. ······ 모든 진실한 믿음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을 지닌 자가 믿음 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을 얻게 해주지. 그러나 진실한 믿음은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칸트의 본체계와 현상계, 즉 ‘사물 자체’와 ‘현상’은 쇼펜하우어에게 와서 ‘의지의 세계’와 ‘표상의 세계’가 됐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현상 세계가 ‘표상의 세계’이며, 인식할 수도 지각할 수도 없는 ‘사물 자체’의 세계가 바로 ‘의지의 세계’다.

니체의 귀족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보수주의로 그치지 않고, 쇼펜하우어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격을 띠면서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파괴성 안에 창조성이 잠복해 있었다.

니체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했으며,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런 충동 혹은 노력 끝에 그가 도달하고자 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극복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이 기이한 동어 반복이 니체의 일생이었다.

바그너와 니체를 묶어준 것은 쇼펜하우어 철학 중에서도 특히 음악 사상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음악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다. 음악만이 세계의 본질인 ‘의지’ 자체와 직접 교감하며 의지 자체를 직접 드러내고 구현한다고 강조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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