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를 믿을 때, 경전에 등장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와 가르침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도, 혹은 절대적으로 신봉할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경전을 기록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간접적으로 신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신은 마치 아무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정글과 같다. 내가 처음 그 안으로 들어가 타인의 눈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 관찰한 실감實感이 나의 유일하고 정결한 지식이 된다. 이 실감을 통한 깊은 깨달음이 ‘니르비차라’다.

천국은 사후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어린아이들은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면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 물건을 신기해하며 탐색하다가 그 물건에 몰입한다.

프라즈냐는 사물의 핵심을 순간적으로 꿰뚫어 보는 통찰을 말한다. 인간은 이것을 통해 아량, 자제, 열심 그리고 명상을 수련할 수 있다. 통찰이 없다면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며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가장 은밀한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며, 가장 고독한 것이 가장 공동체적인 것이다.

삼매경은 종교 지도자의 설명이나 경전의 교리를 통해 진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삼매경은 마치 구도자가 혼자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아무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어두운 숲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지점은 바로 자신의 가장 깊은 내부다. 그곳에 심오한 자기 자신이 있다. 이 시점에는 명상의 대상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명상의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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