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가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로마 정책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철저히 반민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 민중의 뜻을 고려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민의 뿌리가 없는 자들을 그들의 앞잡이로 골랐던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자들의 통치수단은 횡포밖에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다. - P53

이 무렵 맨처음의 복음서 마르코복음이 씌어진다. 마르코복음에는유다전쟁 특히 예루살렘의 운명이 반영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예수와 더불어 몰려다니는 그 민중이 바로 그 시대 이스라엘 민전체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유다전쟁이 있기 전에 쓰여진 바울로의 편지들 (50-60년)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P60

여기에서 엘리야의 기본 자세가 잘 표명되었다. 그는 권력자의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눌린 자의 편에 서서 누르는 자에 대항했던 예언자였다. 엘리야에 대한 그러한 전승들은 이스라엘 민중이 엘리야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지니게 했는지를 잘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 운동을 엘리야와 연결시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많은 뜻을 함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예수의 변모설화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등장하는데, 그는예언자의 대표로서 나타난다. - P71

이것은 하느님이 한 말로 되어 있으며 모세의 소명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민족의 비명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개인구원이 아니라 집단의 구원을,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만일 예수가 응수했던 대답을 모세와 연결시킨다면, 예수는 모세처럼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자로서 소명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태오복음의 입장이다. 따라서 예수의 해방자로서의 소명은 정치·경제적인 맥락(context)에서만 이해될 수있다. - P90

놀라운 것은 갈릴래아의 농촌과 그 주민들이 너무나도 이스라엘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래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 그 농촌은 헬레니즘에 포위된 섬 같았다. 해안지대에는 모두 헬레니즘 도시가 서고 안티오쿠스 이래 특히 헤로데 시대에 세워진 도시들은 헬레니즘화되었다. 그러나 농촌은 전혀 그것에 물들지 않았다.  동시에 저들이 갈망하는것은 하느님의 주권만이 확립된 세상이었다. 그것은 젤롯당의 본거지가 갈릴래아였으며, 바로 저들이 그것을 위해 완전히 산화될 때까지 싸운 것을 회상하면 될 것이다.  - P94

묵시문학은 민중의 글이다. ‘에녹서‘, ‘모세의 묵시‘, ‘제4에즈라‘,
‘열두 족장의 유언‘ 등이 그렇다. 그것은 상징언어를 많이 쓰고, 그리고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이것은 바로 박해 중에 쓴 것이고 구전적 비어(語)의 성격을 띠는데, 이것이 민중언어의 특징이다. - P110

이 마당 처음에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말에 국한해서 파악할 수 없음을지적했다. 예수의 선포의 핵심이 하느님 나라이며 그것이 예수의 사상의 핵을 이룬다면, 그의 삶 전체를 그 나라 도래를 위한 운동으로 보아야정당하다. 세례자 요한의 체포와 함께 갈릴래아 민중에게로 간 그의 공생애 출발부터 예루살렘시를 향한 진격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그 나라를위한 투쟁기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P120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죄인들과 나누는 행위가 문제다. 배고픈 자들과의 나눔에서 민중의연대의식을 결속하며 그것을 그 나라 도래의 축제행위로 본 것이다. 그런 뜻에서 그는 금식하는 당시의 습성을 거부하면서 지금은 "신랑과 함께 있을 때"(마르 2,19/ 병행)라고 단언했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바로 더불어 나누어 먹는 새 시대를 이룰 민중운동의 일환이다. - P123

이런 관심은 역사의 예수를 좀더 가까이 알기 위해서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추구와는 길을 달리한다. 현재까지 서구에서 주도된 신학은 예수가 그리스도(예배의 대상)로 된 것에 그 관심을 총집중했다. 그것은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 보는 전제와 이와 관련해서 이른바 케리그마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과 함수관계에 있다. 이른바 말씀이나 케리그마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이다. 사실 (사건)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고정화해 버리면 도그마가 되고 만다. - P126

우리는 이 두 면을 절대로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예수‘와 ‘민중‘이라고 일단 구별하여 논하나 실은 그렇게 구별되지 않는다. 예수가 민중을인도한 면이 있다면 예수는 민중에게 포위되어 저들의 뜻에 따라 말하고행동했을 뿐 아니라, 마침내 그의 운명까지도 결정된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체로 하고 민중을 객체로 보는 입장을 극복할때 예수의 민중운동을 제대로 파악할 것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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