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면에서 오티즘 스피크스는 목표를 이루었다. 최우선 목표는 "자폐증 인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단순히 대중에게 자폐증이 무엇인지 알리고, 좀더 신경을 쓰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첫해부터 그토록 큰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온갖 단체가 난립하여 경쟁하는 비영리부문에서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었다.

오티즘 스피크스의 두 번째 우선순위는 "권리옹호"였다. 한번 거물조직으로 인식되자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오티즘 스피크스 로비스트들은 즉시 권력 심층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밥 라이트나 그가 보낸 특사와 만나기를 거부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수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된 덕에 오티즘 스피크스는 주 의회들을 설득하여 보험회사에서 자폐증 치료 비용을 급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식으로 백신이 문제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반박당했다. 결국 백신 반대 진영의 가장 큰 성취조차 서서히 해체되었다. 항상 주변부를 맴돌던 백신에 대한 불신은 자폐증이란 호재를 만나 주류 문화 속으로 급부상했다. 변화를 부채질한 것은 주류 언론이었다. 종종 과학자들과 백신에 반대하는 부모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과학과 근거없는 믿음이 거의 동등한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이런 관행은 과학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백신의 양면성이란 서사가 약화되기 시작한 2007년과 200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퇴조했다.

두 가지 사건은 많은 시간을 들여 상세한 내용을 알아볼 여유가 없는 절대 다수 대중의 백신에 관한 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간 일어났던 모든 일이 길고 혼란스러우며 험악한 막장드라마 같다고 느꼈던 대중에게는 백신이 위험하다고 주장한 의사가 면허를 취소당했으며, 그의 논문이 철회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1993년 이전 30년간은 물론, 그 뒤로 이어진 권리옹호운동의 역사에서도 지배적인 시각은 매우 단순하고도 분명했다. 자폐증은 나쁜 것이다. 활동가들의 말이나 글속에서 자폐증은 흔히 외계의 침략자, 기생충, 전염병, 적敵으로 묘사되었다. CAN(당장 자폐증을 완치하자)의 설립자이자 자폐 부모인 포샤 아이버슨이 《뉴스위크》에서 자폐증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표현 또한 정확히 이런 정서를 담았다. "그건 ‘저주받은 자들의 마을’과도 같습니다. 마치 누군가 밤중에 몰래 집에 들어와 자녀를 데려가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몸뚱이만 남겨놓은 것과 같습니다."

짐 싱클레어를 비롯한 사람들이 신경다양성이란 철학을 설파하면서 반박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중심원리는 자폐증을 갖고 사는 것(신경다양성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자폐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역시 인간으로 존재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20세기 후반 아스퍼거 증후군을 인식한 데서 생겼다. 로나 윙이 아스퍼거의 이론을 이용하여 자폐증이 매우 크고 넓고 깊으며 경계가 불분명한 스펙트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1994년 발간된 DSM-IV에서 이 진단명이 채택된 이후, 그 영역은 폭발적으로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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