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새로운 지식을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수정하기 위해, 타자의 생각을 내 시선 안으로 수용하는 수고다. 아무리 교육을 통해 객관적인 시선 훈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 시선은 여전히 내가 아는 세계 안에서만 잠정적인 진리다.

요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인가. 인도의 베단타 철학은 요가를 합일이라고 가르친다. 이 정의는 분명 요가의 다양한 정의 중 하나지만 파탄잘리의 정의와는 정반대다. 그에 따르면 요가는 오히려 분리다. 즉, 요가는 인간의 원래 모습인 참자아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다. 파탄잘리의 정의에는 합일이 없다.

고대 인도인들은 자아를 표현하기 위해 산스크리트어 아트만을 사용한다. 아트만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경험적 자아’와 ‘초월적 자아’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인간이 진아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 무명 속에서 안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모른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 안에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진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어리석다는 말이다. 따라서 깨달음은 자신 안에 진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신은 개념이다. 신은 인간의 삶을 통해 자신의 지문을 남겼다. 그 지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본연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위해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자가 곧 신이다.’

요가는 무엇을 ‘더하는’ 훈련이 아니라 본연의 자신을 찾기 위해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내고 굳이 필요가 없는 것을 제거하는 훈련, 다시 말해 ‘안 하는’ 훈련이다.

일상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습관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경계로 진입하는 경험이 엑스터시ecstas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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