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란 진단명이 처음 등장한 20세기 중반에도 아치는 여전히 수용된 채 삶의 황금기를 흘려보냈다. 자폐증이란 진단명으로 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지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의 삶을 통제했던 관료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편리한 진단명이 있었다. 1970년대 들어 계몽적인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임상적 "백치"라는 꼬리표가 "MR", 즉 "정신지체"라는 꼬리표로 바뀌었을 뿐이다.

20세기 전반 70년간 실제로든 겉보기로든 지능이란 영역에서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한 대책은 기관에 수용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워진" 사람들의 문제는 다양했다. 뇌전증, 뇌성마비, 지적장애가 있었고, 진단명이 확립된 후로는 자폐증도 더해졌다.

학대, 방치, 무관심, 박탈. 입소자가 이런 일을 겪도록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시설들은 분명 이런 모습을 띠었다. 높은 담장 뒤에서 흘려보낸 기나긴 시간 동안 아치 캐스토는 한때 지녔던 빈약한 언어조차 잃어버렸다. 성장하지 못했으며, 점점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려들어갔다.

수십 년간 의사들이 수용시설을 권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장애 어린이에게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해도, 부모가 겪는 수많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의 문제 역시 너무나 생생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24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중증 자폐인 자녀를 돌보는 일은 종종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1960년대에 자폐 어린이를 돕는다며 온갖 희한한 방법을 추구했던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 사실상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었다.

강화와 처벌. 두 가지 요소 사이의 도덕적 균형은 20년간 로바스의 자폐 어린이 연구가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인 이유였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면서 종종 잘못 이해되었던 ‘강화와 처벌’ 이란 용어는 사실 래트, 마우스, 비둘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유래했으며, 임상 및 분석 목적으로 사용된 특정 방법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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