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2 - 끝나지 않는 전쟁 리비우스 로마사 2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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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하여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추구하는 세 가지 대상 곧 토지, 돈, 출세가 동시에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90/634


  티투스 리비우스 (Titus Livius Patavinus, BCE 59/64 ~ ACE 17)의 <리비우스 로마사 2 Ab Urbe Condita Libri>은 <리비우스 로마사> 6~10권까지 내용을 담고 있다.  BCE 389 ~ 293에 해당하는 이 시기 로마 역사는 일정한 공식 안에서 움직인다.


 집정관 선출을 둘러싼 귀족과 평민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분열 상태, 이러한 분열을 틈타 침략하는 외적들 또는 원로원의 전쟁 결의, 전쟁 수행을 위한 독재관 선출과 인테르레그눔(Interregnum)이라는 권력 공백기, 전쟁 이후 내전에 준하는 귀족과 평민의 갈등... <리비우스 로마사 2>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시기는 이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로 급격하게 팽창하면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로마 공화정의 해묵은 과제가 되버렸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평민과 귀족들은 무엇 때문에 대립했을까?


 처음에 도시는 그것을 일으켜 세운 똑같은 기둥 되는 인물에 의존했다. 즉 도시의 지도자급 시민인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Marcus Furius Camillus)에게 의존했던 것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한 해가 끝나는 때에 독재관 직에서 사임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관직에 있었던 집정관급 정무관들은 다음 해의 선거를 주관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그리하여 국가는 인테르레그눔(집정관 궐위 기간) 체제로 돌아갔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9/634


 평민들의 요구사항은 BCE 367년에 제정된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leges Liciniae Sextiae)에 잘 표현된다. 법안의 내용인 부채 상환과 공유지 면적 제한, 집정관 선출 등에 대한 평민들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에 대해 귀족들은 평민들의 통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법안을 잘 지키지 않는다. 또한, 실제 전장에서 평민 출신 집정관들이 연이어 패전하면서 귀족들에게 리키니우스 법안을 따르지 않을 좋은 명분을 얻었고, 내분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대해 매번 로마는  독재관 선출이라는 임기응변을 통해 극복한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스톨로와 루키우스 섹스티우스가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3가지 법안을 주장하고 나섰다. 세 법안 모두 귀족들의 힘을 억제하고 평민들의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첫 번째 법안은 부채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었는데, 빌려온 원금에서 지금껏 지불한 이자의 액수를 공제하고 그 나머지 금액을 3년에 걸쳐 3회에 균등 상환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법안은 토지 소유에 상한선을 부과하여 개인이 5백 유게룸 이상의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세 번째 법안은 집정관급 정무관 제도를 철폐하고 예전처럼 두 명의 집정관을 선출하되 그 중 한 명은 평민 출신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아주 중요한 법안으로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지 않는 한 성취하기 어려웠다. 이것을 가리켜 섹스티우스-리키니우스 법안이라고 한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89/634


 귀족들은 그 참담한 실패에 경악하기보다는 평민에게 군대 지휘권을 부여하여 불행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분노했고, 온 도시에는 그들의 성난 고함소리가 가득했다: "봐라, 평민들 중에서 집정관을 뽑아서, 그런 권리를 누릴 자격도 없는 자에게 군대 지휘권을 주었더니 이런 참담한 결과가 빚어지지 않았느냐! 평민들은 민회의 투표로 귀족들을 관직에서 몰아낼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정당하지 못한 법률은 영원불멸의 신들을 설득하지는 못하지 않았느냐. 신들은 그들의 신성과 조점권에 대한 모욕을 그런 식으로 복수한 것이다. 인간이든 신이든 법률에 의해 이런 것들을 관장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자가 감히 조점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로마 군과 그 사령관이 몰살당한 것이다. 앞으로는 귀족 가문의 권리를 짓밟는 선거를 절대로 개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인 것이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129/634


 로마 지도부는 1세기 동안 분열을 위한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전쟁을 택한다. 그들은 때마침(?) 3차례에 걸친 삼니움 전쟁(Samnite Wars, BCE 343 ~ 290)과 라티움 전쟁(Latin Wars, BCE 340 ~ 338)을 통해 내부의 불만을 일단 잠재우고 시선을 외부로 돌릴 수 있었다. 로마인으로서 평민과 귀족들로 갈라져 싸우던 이들은, 로마군(軍)이라는 하나의 조직아래에서는 '지휘관-병사'로 일체가 되어 국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수많은 역사가와 작가들이 그토록 칭송해마지 않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진정한 로마인과 로마 공화정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사익(私益)보다 공익(公益)을 우선시 한 로마인 정신이 위기 극복의 동력이라고 하지만, 과연 이 시대가 진정으로 위대한 로마정신이 발현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까?


 데키우스는 계속 행군해야 하는 병사들이 무거운 짐으로 고생할 것이 우려되어 그들은 불러 모아 놓고 이런 연설을 했다. "병사들이여, 여러분은 이 정도의 승리로 만족하고 이 정도의 전리품으로 흡족하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기대가 여러분의 용기에 걸맞은 그런 높은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삼니움 족의 모든 도시들과 그 안에 내버려진 모든 물건들이 여러분의 것이다... 그곳에서는 힘든 일은 별로 없고 더 많은 전리품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전리품은 매각되었고 병사들은 어서 행군하자고 사령관을 재촉하면서 로물레아로 갔다. 그곳에서도 공성 작업이나 공성기 동원은 필요가 없었다. 로마 군이 일단 성벽에 접근하자 그 어떤 것도 그들을 물리칠 수 없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486/634


 삼니움 전쟁에서 지휘관이 병사들을 독려하는 연설은 로마 공화국의 위기탈출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귀족(그리고 원로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체제의 약한 부분을 개혁하는 대신 거대한 외부의 적(敵)을 통해 현재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정책을 선택한다. 거대한 적은 막대한 전리품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여기에 평민들 또한 적극적으로 자신의 전쟁에 뛰어들고, 귀족들은 전쟁에서 얻어진 전리품을 평민들에게 배분하면서 그들의 양(量)적인 불만을 채우고, 적들은 동맹으로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기득권과 로마의 몸집을 불리는 정책의 결과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노예가 아니라 당신의 병사 자격으로 복무합니다. 우리는 유배를 떠나온 게 아니라 전쟁을 하러 나왔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전투 신호를 내린다면 우리는 남자답게 또 로마인답게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가 필요 없다면 우리는 군 진영이 아니라 로마로 돌아가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귀족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144/634 


 이러한 로마 귀족들의 정책에 대해 평민들은 종군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삼니움과 라티움 주변 민족들 또한 동맹의 대가를 적절하게 받는 편으로 절충하는 방안을 선택한다. 전쟁을 통한 막대한 전리품이 보장된다면, 원로원 중심의 정체(政體)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동맹관계에 별다른 이의없이 수긍하는 로마의 평민들과 라티움 동맹국들의 행동에서 과연 로마의 정신이라 할 부분이 있는가. 여기에 위대한 로마인의 정신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대신 계산빠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들만이 있을 뿐이라 생각된다. 그들이 로마 공화정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부분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투쟁은 자신의 몫을 조금 더 받기 위한 쟁의 행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에도 그들은 로마 공화정의 이름 아래 정복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부르투스가 지키려 했던 공화정의 가치란, 제정이라는 '독점(獨占)'에 반대하는 '과점(寡占)'주의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과점주의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문제를 회피하고 다음 세대로 넘기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로마인의 정신에 대해 회의(懷疑)를 갖게 된다...


 <리비우스 로마사 2>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내 문제를 덮고 손잡은 평민-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이어지는 시기에서 이들은 한니발(Hannibal Barca, BCE 247 ~ 183)이라는 더 강대한 위협에 대해 하나가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다음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무력으로도 라티움을 자유롭게 해방시킬 수 있으나, 그래도 로마와의 지난 관계를 생각하여 이런 양보안을 내놓으려 합니다. 우리는 양국에 똑같이 공정한 평화 조건을 내놓겠습니다. 영원불멸한 신들은 우리가 힘에서 로마와 똑같은 나라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집정관 두 명 중 한 사람은 로마에서 뽑고, 다른 한 사람은 라티움에서 뽑아야 합니다. 원로원 의원 구성도 두 민족에게서 동수로 선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민족 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동일한 권위의 자리가 마련되고 모든 것이 명실상부해집니다. 한쪽이 필요한 양보를 하면 양쪽이 모두 혜택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로마를 우리의 어머니 도시로 만들고 우리 모두 로마인이 됩시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232/634


그해(기원전 352년) 말에,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 때문에 집정관 선거가 열리지 못했다. 호민관들은 선거가 리키니우스 법에 의해 거행되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주장했고, 반면에 독재관은 집정관 자리를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공개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를 정부 제도에서 아예 제거해 버리겠다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따라서 선거는 독재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열리지 못했고, 다시 한 번 인테르레그눔 체제가 들어섰다. 인테르렉스들은 평민들이 귀족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발견했고, 그리하여 정치적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열한 번째 인테르렉스까지 들어섰다.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 p162/634

조약이나 동맹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에 부끄럽게 여겼던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려 합니다. 로마는 ‘동맹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우리의 군대를 로마의 군대에 추가하여 그들의 병력을 두 배로 늘리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가 로마의 허가 없이는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독립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공정이고 동맹입니까? 왜 모든 것이 이처럼 공정하지 못합니까? 왜 라틴 인 출신의 집정관은 없는 겁니까? 힘을 공유할 수 있어야 권위도 공유하게 되는 겁니다.

로마는 동맹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 그 반란의 진압에 조력해줄 동맹을 구하고 또 군사력 강화를 위해 도시의 인구를 계속 늘려나갔다. 그 결과 세계 최강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로마는 자국을 위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동맹국들을 만들었고, 그런 동맹국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 로마와 유사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제국의 권좌를 틀어쥐고 군사적 지휘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동맹국들이 부지불식간에 로마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_ 티투스 리비우스, <리비우스 로마사 2> 작품 해설 , p60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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