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평과 소쌍 외에도 유비에게 투자한 대표적 인물로는 미축이 있다. 미축은 동해군 구현 사람으로, 조상 대대로 재산을 잃지 않고 잘 모아서 노비와 소작인이 1만 명에 이르고 재산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또 서해의 섬 울주
鬱州에 장원을 소유했는데,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는 장원의 사람들은 미축이 죽은 뒤 300년이 지나도록 그를 섬기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미축의 부와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재물이나 식읍 등 수치로 환산 가능한 수익이야 미축이 여불위보다 못했지만, 진실로 자신을 생각해주는 주인을 만났다는 점에서는 미축이 더 나은 수익을 거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왔을 때, 원소는 구원의 손길을 외면했고 조조가 헌제를 허로 데려와 권력을 장악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 불쌍한 헌제를 처음으로 도와준 지방관은 유표였다.
하지만 『삼국지/유표전』에는 이 대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유표의 전성기는 208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해에 유표에게 중요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다. 손권이 유표의 부하 장수 황조를 살해하고 강하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에 유표는 큰아들 유기를 강하태수에 임명해 뒷수습에 나섰다. 이때 조조군이 남하했고, 조조와 자웅을 겨루기도 전에 병으로 죽었다. 유표의 뒤를 이은 둘째아들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했고, 신야을 지키던 유비는 도망가서 손권과 힘을 합쳐 조조에 대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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