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선은 여포가 동탁의 시비와 사통한 데서 모티브를 따온 허구의 인물이다. 정사의 단편적인 에피소드 2개를 엮어 동탁과 여포의 사이가 틀어졌음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풀어간 소설 삼국지가 더 재미있다. 양자라고 해도 한 여성을 두고 부자가 싸우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 두 사람 모두 패륜으로 몰아 비난한 것이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왕윤은 황실의 부흥을 위해 동탁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후한서/왕윤전』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동탁을 죽인 후 그는 실수를 연발했다. 결과적으로 왕윤은 동탁을 죽인 후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뒷수습마저 잘했다면 정국은 다시 통일과 평화로 전환되어 삼국지 자체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와 역사와 달리 소설 삼국지는 유우를 ‘나약한’ 지방관으로 각색하여 유비의 화려한 데뷔를 빛낸 조연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유우를 다른 군벌들과는 다른 잣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군웅할거 상황을 설명한 여러 책과 지도에서, 유우는 여타 군웅과 구별되지 않은 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처럼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유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 한 번도 군웅의 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명장의 자질을 갖춘 황보숭과 주준이 자신의 처세보다 국가와 대의를 더 생각했더라면, 후한 말의 혼란은 어쩌면 일찍 종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동탁 집권 이후 조정이 급속한 권력 쇠퇴를 겪은 것과는 정반대로 다시 권력과 위엄을 되찾고 지방 세력을 복종시켜 좀 더 오래 황실이 보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연을 연기하는 데 만족했다. 문신인 왕윤과 유우가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반면, 무장인 황보숭과 주준은 역적 동탁을 제거할 기회도 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꾀했다. 그들의 선택은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뼈아픈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