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국과 승상은 원래 진나라와 전한시대 재상의 벼슬로, 후한 조정은 통치상의 이유로 한 명만 임명되는 상국과 승상직을 폐지하고 3명의 재상, 즉 삼공(태위·사도·사공)을 두어 서로 견제하게 해 재상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재상이 한 명일 때보다 세 명일 때 권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동탁은 스스로 상국이 되었고, 이로써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아마 동탁은 전혀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의 이 행위로 위진남북조시대 내내 관찰되는 ‘찬탈’의 조건 하나가 마련되었다. 이후 숱하게 벌어지는 찬탈의 과정에서, 신하된 자의 상국 또는 승상 취임은 그가 황제가 되기 위해 거치는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단계로 자리매김한다.

동탁은 그 외에도 주비周毖와 오경伍瓊, 정태鄭泰, 하옹何?, 순상荀爽, 진기陳紀, 한융韓融 등 조야의 명망 있는 인물을 대거 발탁했다. 그러면서 직속 부하나 총애하는 무장들의 벼슬을 중랑장과 교위校尉에 묶어두는 지혜도 발휘했다. 이렇듯 집권 직후 동탁이 보인 행보는 적어도 외형상 공평무사한 것이었다.

『삼국지/제하후조전』에는 하후돈과 하후연夏侯淵, 조홍曹洪, 조인曹仁, 조휴曹休, 조진曹眞, 하후상夏侯尙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조홍과 조인, 조휴는 조조와 같은 항렬의 동생들로, 이들은 나중에 조조의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면서 황실 일족이 된다. 즉 이 ‘특별한 조씨’들과 하후씨가 함께 실린 것은 후자도 황실 일족 혹은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즉 조씨와 하후씨는 사실상 동족으로 볼 수 있다.

후한시대에는 출세를 하려면 평판이 좋아야 했다. 특히 관리가 되려면 남들의 추천이 있어야 했다. 이를 ‘타천他薦’이라고 한다. 후한에는 ‘향거리선’이라는 관리 등용 제도가 있었다. 군국의 태수와 상은 인구 20만 명당 1명을 ‘효렴’으로 조정에 추천할 권한이 있었다. 그러면 조정의 사도와 상서가 이들을 시험한 후 관직을 주었다. 그 외에 ‘관리 아버지’를 둔 덕으로 벼슬을 얻는 ‘임자제任子制’와, 부서의 장이 추천해 사실상 사후에 중앙정부로부터 임명받는 ‘벽소제?召制’가 있었지만, 주된 출세 코스는 효렴으로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효렴으로 추천을 받으려면 지방(고향)에서 평판이 좋아야 했다. 그리고 이 평판이란 ‘효렴’이라는 명칭에서 보이듯이 주로 효심이나 덕망에 관한 것이었다.

원술은 표를 올려 손견을 행파로장군行破虜將軍 예주자사로 추천했다. 하지만 말이 표를 올려 추천한 것이지, 사실상 원술이 손견을 파로장군과 예주자사로 임명한 것이었다. 대신 원술은 남양군을 넘겨받았다. 관직과 땅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거래는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막장은 동탁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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