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말라카의 통치자가 되는 사람은 베니스의 목에 손을 얹게 된다."

말라카인은 계속해서 깨끗한 물과 하수 탱크 시설을 갖추고 살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말라카에는 옛 영국령 동남아시아의 다른 해협 식민지에 비하여 치명적인 전염병이 적었다. 말라카인들은 또한 강 가까이에 살았는데, 이것은 하수 재활용 기법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 튼튼한 저장소들은 화재에 강한 특성 덕분에 포르투갈의 공격에도 멀쩡하였다. 그들은 강어귀를 따라 귀중품들을 보관하였고 그중 일부는 도시 주변에 있는 과수원에도 숨겼다.

말라카의 농업은 말레이 반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활발하지 않았다. 약간의 불이익은 말라카 사람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도시 외곽 지역은 늪지대에 있었지만, 말라카의 도시는 언덕 위에 있었다. 그 도시는 원래 강어귀에 있는 단순한 지역이었으며, 주요 일자리는 말라카강을 따라 전개된 어업밖에 없었다.

말라카에는 켈링 케이프(Keling Cape), 차이나타운, 자바 마을 등과 같은 대규모 상인 거주지역이 있었고, 그 지역은 모두 무역업자들의 주거지역으로 활용되었다.

말라카의 실제 영토는 쿠알라 링기(Kuala Linggi)에서 케상(Kesang)까지 포함하였다. 그 도시는 말라카강 어귀에 수산업 기지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싱가포르의 왕은 말라카가 발전하면서 유명해진 이곳에 약간의 잠재력을 불어넣었다. 제국은 지리상 두 지역으로 나뉘었다. 도시가 설립된 최초의 지역과 통치세력이 방어하고 점령한 영토. 초기에 말라카인들이 세운 도시는 해안선을 따라 확장되었다. 곧 이 도시는 보호를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으로 설립된 도시들을 차례차례 점령하면서 성장하였다.

지식은 말라카가 제국의 확장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술탄들은 학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인재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중요한 학문 분야는 무기생산, 외국어, 가축 사육(축산학), 항해, 건설, 이슬람 신학 등이었다.

무역상들은 인종에 따라 귀족들이 관리하였다. 이 사법체계는 특히 무역상들에 대한 공적인 재판을 수립하기 위해 민사 및 관세 사건을 포함하였다. 그래서 귀족은 관청이나 그의 공적인 거소(居所)에서 재판을 통해 각 사건을 다루도록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라카 술탄국에 있는 기관들의 호칭은 산스크리트어 어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말라카 술탄국의 건국 관점에서, 오직 중요한 호칭만이 술탄국의 기관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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