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가 단순히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폭넓은 분야의 시민들을 더 친밀하게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거버넌스의 심화를 이끈다는 점에 대한 강조가 중요하다.

동료 시민 거버넌스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에서 강조하는 관행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 보여 준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합의 도출에 부여하는 가중치에 있다. 기존의 입법 의사결정은 일반적으로 합의 도출을 염두에 두고 시도된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제를 충족하기 위한 교섭과 절충을 거치면서 편의적 의사결정인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심의적 거버넌스는 모두가 수긍하는 ‘예스’에 도달하는 절차를 구축해서 유리한 상황을 모색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예산, 공교육, 치안 유지는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2세기 동안 지속된 대의민주주의 이후 전 세계의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과 관심사, 열망이 무시되거나 제한된다는 확신으로 지쳐 가고 있다. 우리 인간 종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는 행성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번성할 것인가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도전에 직면한 바로 그 순간에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소외와 신뢰의 상실이 발생했다.

진보의 시대에 평등은 자율성의 파생물로서만 가치가 있다. 자율성에 대한 신념이 전제되지 않고는 평등을 옹호할 수 없다. 스스로 자율적 행위자라고 믿는 만큼 평등을 요구할 것이며 그것이 다반사가 된다는 뜻이다. 모든 개인의 본질이 자율성의 추구라면 평등한 대우에 대한 욕구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자신의 자율성 확보를 보장하기 위해 언제나 조심하고 부단히 경계하는 그림자 같은 동반자로서 말이다.

하지만 공감 충동은 양육의 방식과 일생에 걸친 연속적인 애착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감은 역사와 함께 진화하고 사회의 진화 그리고 (사회과학자들이 거의 탐구하지 않은 사회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문명의 흥망성쇠와도 깊이 얽혀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인프라가 구축되고 전개될 때 공감 역시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확장된다. 각 문명의 인프라는 구성원들이 충성을 바칠 수 있는 서사적 세계관과 함께 고유한 경제적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 질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 생태 발자국 등을 수반한다.

윌슨은 다른 모든 생물 종과 마찬가지로 인간 종의 본질적 욕구는 지배가 아닌 번성이며 생명애는 동료 생물체 및 자연계와 공감하려는 우리의 타고난 성향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며 생명의 진화를 더 나은 장으로 옮겨 놓았다. 단 한 방에 우리 인간 종을 자연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서 자연과 화합하고자 하는 타고난 유전적 성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우리 인간 종은 그렇게 함으로써 번성한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나이가 어릴수록 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 데 반해, 나이가 많을수록 환경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유전적 구성에 포함된 생명애 지향성을 타고나지만, 전통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학습함으로써 그것이 육성되기보다 오히려 소멸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회복력 시대에 부합하도록 인류의 이야기를 다시 설정하려면 우리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이의 유전적 구성에 내재된 타고난 생명애 충동이 유치원 교육에서 발현되고 번성하도록 하고 학교교육, 나아가 직업 생활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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