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수난곡」은 특히 그러하다. 「요한 수난곡」에 대한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고 이 작품에 접근하다가는 길을 잃거나 당황하기 십상이며 심지어 그 작품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기분까지 느껴진다. 듣는 입장에서 우선 관심을 끄는 점은 이야기의 진행이다. 사건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이야기에는 확장된 묵상 악장들이 끼어들며 훼방을 놓는다. 그렇게 이야기의 전달과 응답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쌍둥이 시간대가 번갈아 등장한다

바흐의 스트럭처를 풀어내는 실마리 중 하나가 바로 그처럼 변화하는 속도감이 주는 효과다. 그 효과는 「요한 수난곡」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장중하고 신중하다. 이런 음악을 제대로 해석하는지 여부는 연주 중 극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속도감에 부응하는 ?또는 되풀이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요한 수난곡」에서 즐길 수 있었던 생생한 장면 묘사와 거침없는 극적 추진력이 감소되는 대신 이 「마태 수난곡」에서는 정교하게 의인화된 다양한 ‘음성들’ 드라마 자체(바흐가 주로 대화를 통해서만 진행시키는)에 개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리아도 부르는 우화적인 요소들과, 생산적인 긴장 상태에서 연속적이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시간
변화를 유지하는 방식을 즐길 수 있다. 이 같은 통일된 페이스는 「마태 수난곡」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다.

앞서 작곡한 수난곡에서 작품에 신빙성과 날카로운 통렬함을 선사했던 것은 요한이라는 특정한 목격자의 설명이었다. 여기에 불규칙하게 등장하던 아리아와 코랄은 이러한 긴장감을 더욱 돋우었다. 이러한 효과가 마태오의 버전에서는 더 많은 출연진과 ‘한 인간의 슬픔’으로 대변되는 예수의 인간적인 파토스가 추가되며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보는 원초적 소재를
가지고 만든 끝없는 투쟁과 도전, 배신과 용서, 사랑과 희생, 동정과 연민의 휴먼 드라마로서, 이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다. 바흐의 음악은 때때로 이야기의 뼈와 피에 거의 물리적으로 직접 관여하면서 마태오의 이야기와 상상 속의 관망자들의 충격적인 반응 양쪽 모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전율하고, 냉담해지고, 눈물을 흘리고, 심장이 박동하고,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 되는 것이다.’

강렬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처럼 설득력 있고 애틋한 방식으로 표현한 도덕적 딜레마라는 점에서, 바흐의 두 편의 수난곡에 필적하는 작품은 내가 연구하거나 지휘해본 당대 오페라 세리아 중에는 단 하나도 없다.

음악과 언어의 관계는 언어와 생각과의 관계만큼이나 복잡하다. 언어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전달 과정에서 감수성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음악은 연주를 통해 생각과 감수성을 완전히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다. 이 같은 표현 방식을 일상적 교류에 사용하는 것은 그리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으로 표현된 생각들은 언어로 표현된 그것보다 훨씬 분명하고 충만하게 전달된다.

시에 대해 음악은 물감을 한 겹 더 덧칠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즉,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들의 물리적 실재를 더 두껍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음악은 메타포에 상응한다. 음악은 말의 흐름과 암송된 시의 흐름에 제동을 걸고, 서로 다르게 구성된 리듬과 템포 속에 시를 배치한다. 작곡가 자신이 읽어내려가는 언어에 청중이 함께 참여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바흐는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었다. 용인되던 취향의 범위, 더 많은
형식적·표현적 어휘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 신에게 기도하고 이웃을 교화시킬 수 있는 음악의 범위를 더 확장시키고자 했고,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늘 그 이상을 원했다.

언어 그 자체를 표현하는 언어를 흔히 ‘메타언어’라고 한다. 바흐의 음악 중 사실상 가사에 순응하는 소위 ‘타협’의 영역과, 가사에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충돌’의 영역 사이에는, 유사한 맥락에서 발터 베냐민이 언급한 ‘소리와 대본의 이분법’과 비슷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이 중간 지대에서는 가사를 동등한 입장에서 논하고, 확장하고, 사색할 수 있으며, 그에 동의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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