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운동 이후, 중국 선각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관점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들은 유물사관 측면의 관점에서 사회 발전의 근원을 생산력과 생산관계, 경제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상호 모순 운동에 있다고 보았다. 계급투쟁학설 측면에서, 계급과 계급투쟁의 정의, 계급의 구분과 계급투쟁인 서로 다른 경제이익으로 발생한다는 관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국가는 계급투쟁의 수단이며 무산계급이 정권을 장악해야만 다수인이 소수인에 대한 독재를 실현한다는 등 기본 사상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잉여가치이론 측면에서, 잉여가치는 자본의 본질을 중심으로 한다. 생산과정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 일부분을 무상으로 점유하는 것이다. 이는 무산계급에 대한 착취이고 자본축적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는 등의 관점으로 소개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 역사 제1권 상> , p155/952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1953 ~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고, 상무위원회 자리가 모두 그의 측근들로 채워지면서 덩샤오핑(登小平, 1904 ~ 1997)이후 지속되어온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 진행을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는 어떻게 바라본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중국공산당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 청나라 말기부터 문화대혁명기까지 다룬다는 시대적 제약은 있지만, 공산당의 역사관(歷史觀)을 파악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상세한 내용은 각 리뷰에서 정리해야겠지만, 대체적으로 <중국공산당 역사>는 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담고 있다. 중도의 실패도, 이어지는 혁명의 다른 과제를 부여하는 변곡점으로 이해된다. 마치, 출발점인 원점과 끝점인 문화혁명기의 중국 사이의 점을 직선(直線)으로 연결하고, 좌우 약간의 표준오차만을 인정하며, 필연적으로 공산주의혁명이 도출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역사관 속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들이 '인민의 적(敵)', '배신자'로 그려지는 사관에 대해 긍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역사철학의 일부임을 일단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은 헤겔과 영국 고전 경제학이 뒤섞여 형성된다. 그는 헤겔처럼 세계는 변증법적인 정칙에 따라 발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발전의 원동력에 대해서는 헤겔과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헤겔은 '정신 Spirit'이라는 신비적 존재가 <논리학>에 제시된 변증법의 여러 단계에 따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정신이 왜 그러한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법칙의 불가피성을 제외하면 앞서 말한 헤겔 병증법의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추진력이다. 마르크스에게서 추진력은 실제로 인간이 물질과 맺는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산 양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실질상 경제학이 된다. _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 p990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의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서술된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역사철학이 잘 드러난 역사서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만, 제국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인 20세기초의 중국에서 칼 마르크스의 '물질'은 생산양식보다 분배문제인 '토지개혁'에서 더 첨예한 문제로 드러난다는 것은 중국 역사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건대,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후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중국 인민들은 간고한 투쟁을 벌였다. 중국의 선각자들은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구국구민의 진리를 모색하며 중국 사회를 변혁하는 여러가지 방안을 시도했다. 이러한 모색과 투쟁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중국 역사의 진보를 어느 정도 이끌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반식민지 반봉건의 사회성격과 중국인민의 비참한 운명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_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공산당 역사 제1권 상> , p94/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