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5 - 테아이테토스 / 필레보스 / 티마이오스 / 크리티아스 / 파르메니데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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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b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논의에 대한 그대의 열성은 감탄받아 마땅하오. 말해보시오. 형상들 자체를 형상들에 관여하는 사물들과 구분하는 이런 구분법은 그대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인가요? 그대는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같음과는 별도로 같음 자체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점에서는 하나와 여럿과 방금 그대가 제논한테서 들은 모든 것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나요?"... c "소크라테스, 다음과 같은 것들은 어떻소? 머리털이나 진흙이나 먼지나 그 밖에 더없이 무가치하고 하찮은 것처럼 가소로워 보이는 것들 말이오. 그대는 그런 것들 하나하나에도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과 다른 별도의 형상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처한가요?" "아니요" 하고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이며, 그런 것들의 형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겠지요."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83


 플라톤(Platon, BCE 428 ? ~ BCE 348 ? )의 <파르메니데스 : 형상에 관하여 Parmenides>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인 대화편이다. 다른 대화편에서는 자신만만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특기인 산파술(Socratic method)을 통해 상대를 자신의 의도대로 몰아세우던 소크라테스(Socrates, BCE 470 ~ BCE 399)지만, 이번 대화편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E 546~ BCE 501)를 만나 시종일관 끌려다니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플라톤 철학의 사상적 기반인 이데아(Idea)론 자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131b "아니지요" 하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답니다. "그것(형상)은 하나이자 같은 것이고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 자체에서 분리되지 않는 날(日)과 같으니까요. 그처럼 각각의 형상은 하나이자 같은 것으로서 모든 것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요."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84


 형상(形相)의 세계인 이데아들과 이들의 모방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세계. 소크라테스는 구체적으로 파르메니데스에게 이데아론을 펼치지만, 오히려 관여의 딜레마, 가분성(可分性)의 역설, 구분과 불가지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무엇이 형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懷疑)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이데아의 존재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파르메니데스는 이에 대해서도 긍정하지 않는다. 이데아를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패러독스(paradox). 


135a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형상들에는 이런 문제점들과 그밖에도 수많은 문제점이 내포될 수밖에 없소. 만약 사물들의 그런 형상들이 존재하고 누가 각각의 형상을 '어떤 것 자체'로 구별한다면 말이오.... b "그러나 소크라테스"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답니다. "만약 누가 방금 언급한 문제점들이나 그와 같은 다른 문제점들에 주목한 나머지 사물들에는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개개의 사물을 위해 형상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사유가 향할 곳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494


 이런 상황에 대해 이후 대화편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청년 아리스토텔레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인물)를 상대로 하나(一者)의 특성에 대해 보다 깊은 논의를 이어간다. 


141e "따라서 하나는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존재하지 않네. 그렇다면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에 관여할 테니까. 그러나 하나는 분명 존재하지도 않고 하나도 아닐세. 이런 논의가 믿을 만한 것이라면. 142a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자기에게 속하거나 딸린 것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나는 이름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으며, 지식이나 감각적 지각이나 의견의 대상이 될 수도 없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13


 파르메니데스는 대화를 끌고 가면서 하나의 가설에 대해 여러가지의 연역(演繹)을 시도한다. 이러한 연역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가설의 참, 거짓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一者)안에 포함된 여러 모순이 드러나면서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162a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하나는 존재하는 것 같네. 만약 존재하지 않는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기 위해 어떻게든 자기 존재의 일부라도 포기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존재하는 것일테니까. 따라서 하나가 존재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려면, 자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강제할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를 가져야 하네. 이는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려면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하지 않음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그래야만 존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하지 않을 걸세.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려면, 존재하는 것의 존재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에는 관여하지 않을테니까. 한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완전하게 존재하지 않으려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위해 존재하지 않음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위해 존재함에 관여할 걸세.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에 관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함에 관여함으로,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만큼 존재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존재함에 관여할 걸세."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69


  대화편을 읽다보면 느껴지지만, 이데아론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개념의 형상화다. '없음'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통해 비로소 '부재(不在)'가 될 수 있다는 설명 구조 속에서 모든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고, 언어로 표현되었다는 자체로 존재성을 얻으며, 이러한 존재성이 명사/주어로 나타나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심지어는 대립되는 술어(術語)마저 흡수하면서 이데아론의 취약함을 스스로 드러낸다. 


 165d "따라서 만약 하나는 존재하지 않고 여럿이 존재한다면, 여럿은 반드시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하며, 접촉하기도 하고 서로 떨어져 있기도 하며, 온갖 운동을 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정지해 있기도 하며,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텐데, 그런 것들을 빠짐없이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는 쉬운 일일 것세."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79


 <파르메니데스>는 이처럼 플라톤 핵심 사상인 이데아론이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약점이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가 파르메니데스와 대화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다른 대화편에서 늙은 소크라테스는 젊은 제자들과 대화를 통해 이들을 불멸의 형상, 이데아 세계로 이끈다. 과거 자신이 인정했던 이데아론의 약점을 감추고서.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강조한 플라톤 사상 자체가 서양철학사 전반의 거대한 지적 사기극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역시 시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시간 밖에서도 존재하는 이데아의 모순이 소크라테스에게도 투영된 작가의 의도적 노림수라고 읽어야 할까. 여러 면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생각할 거리와 함께 혼란을 주는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152e "따라서 하나는 자신과 같은 동안 생성되기도 하고 존재하기도 하므로 자신보다 더 젋지도 더 늙지도 않으며, 자신보다 더 젊어지지도 않고 더 늙어가지도 않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44


 155c "이 모든 것에 따르면 하나 자체는 자신이나 다른 것들보다 더 늙기도 하고 더 젊기도 하며 더 늙어가기도 하고 더 젊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자신이나 다른 것들보다 더 늙지도 더 젊지도 않으며 더 늙어가지도 더 젊어지지도 않네. 그러나 하나는 시간에 관여하여 더 늙어가기도 하고 더 젊어지기도 하므로 반드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관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는 존재하고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며, 생성되었고 생성되고 있고 생성될 것이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50


 마지막으로, <파르메니데스>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 ~ 1976)의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의 연결 지점이라 생각될 수 있는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글을 갈무리하려 한다. 존재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에 관여하는 하나(一者),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은 하나(一者). 이러한 모순된 성격이 시간 속에서 동시에 공존하는 지점이 '찰나'라면, 하이데거는 그 '찰나'를 바로 현재에 미래를 향해 기투하는 그 시점에서 포착한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존재와 시간>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로써 <테아이테토스> vs 러셀, <파르메니데스> vs 하이데거의 대진표가 짜여졌다.


 156d "그것이 변할 때 그 안에 있음직한 이 이상한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찰나 to exaiphnes 말일세. '찰나'는 거기서부터 두 상태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 같으니까. 어떤 것이 정지해 있는 동안에는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변하지 않고, 움직이는 동안에는 움직이는 상태에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 대신 찰나라는 이 이상한 성질은 운동과 정지 사이에 잠복해 있고 어떤 시간 안에도 없네. 그래서 그것 안으로,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은 정지해 있는 상태로 변하고, 정지해 있는 것은 움직이는 상태로 변한다네." _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 p553

166c "그렇다면 한 마디로 ‘만약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옳은 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로 하세. 하나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하나도 다른 것들도 자신들과 관련해서든 서로와 관련해서든 온갖 방법으로 모두 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며,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같기도 하다고 말일세." - P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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