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디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어찌 《파르메니데스》를 무시했겠습니까? 실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우리가 《파르메니데스》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탐구를 한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 견해를 항상 고수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번 올바르게 형성되면 불변할 게 확실한 개념들을 소크라테스를 통해 알게 되자, 그는 그러한 개념들을 감각적인 것에 연관시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즉 개념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다른 존재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숭고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엄청난 영향입니다. 존재란 없고, 영원한 생성은 영원한 비존재 안에 있습니다.

이데아를 인정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그 반대는 철학에 더욱 곤란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아직 젊을 때 흔히 무용하다고 여겨지고 요설로 일컬어지는 변증술을 익힐 것을 권합니다.

이 변증술적 방법은 훈련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데아론이 회의주의로 와해되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참된 생각을 우연히 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물론 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참도 거짓도 아니고 다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만 참입니다. 정견을 이성을 통해 완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성의 개념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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