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들어온 자금의 일부는 그리스나 스페인의 부유한 기업체들의 자금이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독일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다시 자국으로 회수해 온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환율 차이로 인한 손실이나 독일 수출업체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자국 통화가치 상승 같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은 대부분이 통일된 유로화로 거래되었고 또 유럽중앙은행 보증으로 대규모 거래에 대해서는 복잡한 절차 없이 지급결제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 채무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국채를 적격담보물로 인정해주지 않을 예정이었다. 유로존 채권시장에는 다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리스와 아일랜드 같은 작은 국가들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가 이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규모가 큰 국가들을 포함한 남부 유럽 전체의 위기로 번져가고 있었다. 2007년에 유로존 채권 투자자들은 그리스 국채를 독일 국채 분트와 같은 등급으로 취급했지만 2011년 9월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CDS 스프레드는 혁명으로 홍역을 앓는 이집트보다도 더 높았다.

만일 유럽에서 자금이 빠져나간다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에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악화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달러화 매각 공황상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투자자들은 세계 통화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 있는 미국 재무부 채권 쪽으로 몰려들었다.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중국의 미국 채권 보유 시대는 끝이 났다. 그렇지만 중국의 보유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에서 1조 3000억 달러 사이로 안정세를 보였다.

중국의 비판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놀라웠던 건 그 비판이 미국 국내에 미친 영향이었다. 8월 5일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 신용등급 평가기관들 중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미국의 등급을 AAA에서 AA+로 끌어내렸다.

미국 정치제도의 약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신용등급 평가기관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었다. 평가기관들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 MBS에 내린 AAA등급은 2008년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 유로존 위기의 속도를 좌우한 것도 이들의 연속적인 등급 조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 예산안에 대해서조차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의 의지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시장에서는 많은 은행들과 중개인들이 그저 유럽연합에 안정을 위한 노력만을 호소하지 않았고 수십억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승부를 걸었다. 안정화를 가로막고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건 미래의 유로존 통치와 관련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 사이의 갈등이었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가 이렇게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과 프랑스 측에서는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을 활용해 기금의 상한선을 끌어올리고 그런 다음 차입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는 임시방편을 제안했던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그 속셈은 뻔히 들여다보였다. 분데스방크는 직접 관련이 없는 IMF를 이용해 EFSF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 계획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가세했지만 독일의 고집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만일 이탈리아가 IMF의 지시에 따르는 것에 동의한다면 독일로 돌아가 유로존 지원을 위한 기금의 규모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 의회의 공식 승인을 받아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메르켈 총리는 특별인출권을 통한 기금의 규모 확대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가 서로 엇갈리고 있었다. 최소한 영국 보수파들의 입장에서 유럽연합 잔류에 대한 결정이 곧 내려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유로존에서 갈등이 불거진 건 앞서 소개한 2011년 12월 초 유럽연합 본부에서 언급된 두 가지 계획안에 공통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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