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채권은 본래 이자나 원금의 즉각적 지급에 관해 현재나 미래의 시점에서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는 채권이다. 이 채권의 가격은 다름 아닌 만기에 대한 예상금리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만약 예상금리가 떨어지면 우량채권의 가격은 내부수익률을 낮추기 위해 오를 것이고 금리가 오르면 그 반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 ~ 1976)이 생각하기에, 채권(bond)은 우선주(preferred stock)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때문에, 그의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에서 채권과 관련한 내용은 스쳐가듯 간략하게 소개된다. 내개가치와 시장가치의 차이에 해당하는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을 통해 '시장을 이기는 전략'을 추구했던 그에게 시장의 모든 위험요인들이 이자율(interest rate)에 할인율이라는 별칭으로 가격에 반영되는(심지어 거대하기까지한) 채권 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꽁초를 주워담듯이 하는 그의 장기가 발휘될 여지가 채권시장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이자율이 (최소한 일부는) 관련된 경제적 요인들이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반영하는 내용들을 이미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이자율이 현재의 이자율보다 높거나 낮을 것이라는 식의 예측은 합리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예측의 차원에 그쳐버릴 것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서로 다른 위험회피 성향과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을 갖는 갖는 이들이 참여하는 두 시장은 분명히 다른 시장이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운용처가 채권시장이다보니, 채권시장의 이자율에 대한 설명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의 유동성 선호이론에 잘 표현된다. 물론, 케인즈는 해당 이론을 화폐에 적용했지만.


 이자율은 항상 유동성(流動性)을 내놓는 데 대한 보수이기 때문에, 화폐 소유자가 화폐에 대한 그들의 유동적 지배력을 내놓는 것을 원하지 않는 정도의 척도가 된다. 이자율은 투자를 하기 위한 자금에 대한 수요(需要)와, 현재의 소비를 억제하려고 하는 의향(意向)을 균형시키는 "가격(價格)"이 아니다. 그것은 부(富)를 현금(現金)의 형태로 보유하고자 하는 소망과, 이용 가능한 현금의 양(量)을 균형시키는 "가격"인 것이다. _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p197


 그래서 우량채권 분야에서는 통상적으로 분석가가 가격 예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경험을 통해 가격변동이 일어날 때 우량채권 보유자의 금융자산 규모에 영향을 줄 만큼 변동폭이 넓은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64


  채권시장에서 이자율은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처럼 수많은 변수들의 종합으로 계산되고, 시장참여자들은 가격수용자로서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그레이엄은 외국채권 투자 시 위험사항을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지적한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1950년대와 오늘날을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외국의 정치적 안정성이 투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는 것은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국정부 채권을 다룰 때는 이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종목들은 재무 분석에 잘 반응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투자 역시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인 안정에 대한 확신이나 성실히 채무이행을 할 것이냐 하는 데 대한 믿음과 같은 일반적 고려사항에 통상 의존하게 된다. 외국정부 채권은 이론적으로는 국가 전체 자원에 대한 청구권이다. 하지만 외부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실제로 이런 자원들이 이용될 수 있는 범위는 상당 부분 정치적 형편에 달려있다. _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 p435


 얼마 전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국채권시장을 뒤흔들었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행한 무분별한 행동에 채권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덕분에 50조가 넘는 금액이 '김진태發' 공황을 잡기 위한 긴급자금으로 동원되었다. 다행히, 이 사건이 당장의 '사라예보의 총성'이 되지는 않았지만, 몽유병자들 때문에 며칠 사이에 안보위기, 경제위기, 정치위기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요즘이다. 시장은 예상할 수 있는 멍청한 정책보다 불확실한 시장을 더 싫어한다는 성향을 몽유병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 위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관련기사] 김진태가 던진 '레고랜드 불씨'... 채권시장 집어삼킬 '큰불'로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2102153311


 공황을 잡기 위한 대출이라면, 대출은 그러한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평상시의 모든 우량한 '은행담보'에 대해 대출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우량한 담보도 공황 때에는 불안감 때문에 우량담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래서 바른 정책이란 될수록 그런 문제가 해결되어 정상적인 거래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은행지급준비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우량담보에 대해 대출을 해주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앞으로 공황이 닥친다면 영란은행이 어떤 행태를 보일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영란은행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고 확고한 정책을 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_ 월터 바지호트, <롬바드 스트리트>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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