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대변인을 역임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10월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저격글. 5년 치하로 그친 항우의 초나라에 비유하며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라고 말해. 주어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다들 누구인지 아는 분위기. 함께 일했던 동료의 생생한 '피어 리뷰'. _ <시사 In VOL.787> p6


 <시사 인> '말말말' 코너에 실린 내용 하나에 시선이 머문다. 이미 2주 전 널리 알려진 뉴스이긴 하지만, 전(前) 대변인이 남긴 글을 직접 보니 새롭게 보인다. 5년만에 자신의 초(楚)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폐주(廢主) 항우(項羽, BCE 232~202). 밑바닥에서 일어나 한나라의 왕(王)이 되었다는 점은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 BCE 145~86)도 인정하지만, 항우의 마지막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기 그지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날카로운 평가 안에서 항우에 비유된 인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태사공은 평한다... 항우는 자신이 세운 공을 자랑하면서[功致辭] 자신의 지혜만을 앞세운 채 옛일을 거울로 삼지 않았다. 패왕의 공업을 이야기하면서 무력으로 천하를 경영하고자 한 것이 그렇다. 5년 만에 마침내 나라를 패망케 만들고, 자신의 몸이 동성에서 찢겨 죽을 때까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끝내 호언하기를,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결코 내가 용병을 잘못한 탓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어찌 황당한 일이 아닌가!_ 사마천 <사기본기> <항우본기> , p377


 항우패망 직전 부인에게 불러준 시詩는 끝까지 몰락의 원인을 몰랐던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듯하다. 스스로를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로 칭하며 끝까지 하늘을 원망하는 항우.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에는 주유(周瑜, CE 175~210)가 하늘을 원망하며 "하늘은 왜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또 낳았는가(旣生瑜 何生亮)"하는 원망이 실려있지만, 두 원망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원망에는 황당함을, 후자의 원망에는 영화 <아마데우스 Amadeus>에 드러나는 천재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바라보는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에 대한 공감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인물의 인물됨과 행적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항우는 한밤중에 일어나 장중帳中에서 술을 마셨다. 항우에게 우虞라는 미인이 있었다. 극히 총애해 늘 데리고 다녔다. 또 추騅라는 준마가 있었다. 그는 늘 이 말을 타고 다녔다. 항우가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스스로 시를 지어 노래했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 덮을 만해

時不利兮騅不逝 시운이 불리하니 추騅도 나아가지 않는다

騅不逝兮可奈何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좋은가

虞兮虞兮奈若何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하란 말인가


 항우가 여러 번 읊조리자 우미인이 화답했다. 항우의 뺨에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좌우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_ 사마천 <사기본기> <항우본기> , p369


 항우의 〈해하가 垓下歌〉를 읽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끝까지 질주한 한 인물과 주변의 비극을 생각하게 된다. 초패왕 항우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의제(楚 義帝)를 보필했다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런 가정 자체가 항우 그리고 '유사항우'에게는 무리겠지만. 전대변인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시를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우문술 등이) 압록강을 건너 추격하였는데,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사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피로케 하고자 싸움마다 문득 패하니, [우문]술 등은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다 이겻다. 이미 여러 번 이긴 것을 믿고 또 중의(衆議)에 몰려, 마침내 동쪽으로 진격하여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까지 30리 되는 지점에서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을지] 문덕이 [우]중문에게 시를 지어 보냈다.


策究天文 신통스런 계책은 천문(天文)을 뚫었고, 

妙算窮地理 묘한 계산은 지리(地理)를 다했도다. 

戰勝功旣高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한 줄 알아 그만 두시지! _ 김부식 외, <삼국사기><열전 4 을지문덕> , p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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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1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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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1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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