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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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 앞에서 내놓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자신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 p20/388

새뮤얼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 1927~2008)은 <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claiming of World Order>에서 탈(脫)냉전 이후 국가 간 갈등의 주제 '문명(civilization)'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왜 '문명'이 새로운 세계의 단절과 대립선이 되는가? 헌팅턴은 이에 대한 해답을 지난 시대 '서구'와 '비서구' 의 대립에서 찾는다.

문명 중 유일하게 서구는 다른 모든 문명에게 대대적인, 때로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다른 문명들의 상대적 힘이 증가하면서 서구 문화의 매력은 반감되며 비서구인들은 점점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애착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서구 문화의 보편성을 관철하려는 서구, 특히 미국의 노력과 서구의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생겨나는 부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194/329

정치적으로 시민혁명, 경제적으로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한 서구 열강들에 의해 비서구권 국가들은 식민지나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되고, 구시대의 제국들은 해체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신생국가들은 서양 세계를 뒤따라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서구 세계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서구에 의존해 근대화가 이룩되었다면, 근대화와 함께 일어난 민족주의 등의 힘은 탈(脫)서구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후 정신적으로는 전통사상으로의 회귀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 헌팅턴의 설명이다.

결국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서구의 가치/제도/관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왔다. 서구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구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 요소에 비하면, 근대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요소는 극히 작은 양이다(p82)... 서구의 우위가 사라지면 서구의 힘도 아울러 사그러들 수밖에 없으며, 비서구 세계는 주요 거대 문명과 그 핵심국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 단위로 흩어질 것이다. 서구의 세계적 영향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중국이 부상하면서 아시아 문명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가장 빠른 속도로 힘을 키워 갈 것이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85/329

힘을 잃어가는 서구와 힘을 키워온 비서구. 여기에 더해 전통가치에 따라 헝팅턴은 세계를 문명권으로 구분하고 이들의 협력과 대립 속에서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중에서도 헌팅턴은 서구와 이슬람, 그리고 이슬람과 유교 문화권의 대립과 협력관계에 주목한다. 이러한 큰 틀에서 <문명의 충돌>은 이하 본문에서 7~8개 문명권의 핵심국 헤게모니와 문명권 간 대립과 협력에 대해 전망한다.

요약하면 탈냉전 세계는 7~8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은 국가들의 이익, 대결, 협력 양상을 규정한다.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국가들은 놀라울 만큼 판이한 문명들에서 유래했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 간의 충돌이다. 정치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양상은 문명과 문명마다 다르다. 국제 문제의 중요한 사안에는 문명의 차이도 들어간다.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온 서구 문명으로부터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세계정치는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24/388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지배적 대립은 서구 대 비서구의 양상으로 나타나겠지만,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횡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194/329

문명과 그 핵심국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양면적이며 자주 변화한다. 한 문명 안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른 문명에 속한 나라들과 관계를 정립할 때 대체로 핵심국의 노선을 따른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문명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다른 문명에 속한 모든 나라들과 동일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제3의 문명에 속한 공동의 적을 겨냥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문명에 속한 나라들 사이의 협력을 낳을 수 있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 p263/329

1993년 공산권이 붕괴되는 시점에 쓰여진 <문명의 충돌>은 분명 20세기 말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 이후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오늘날 국제 정세를 문명 간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급진적인 이슬람 교도가 하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극우집단의 대두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고, 극우세력의 대두가 경제적 불평등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문명 간의 대립보다는 경제적 문제에서 찾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모든 전쟁의 원인은 정치가 아닌 경제가 아니었던가. 다만, 노골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탐할 수 없기에 만들어낸 대의명분이 종교, 사상, 민족주의 등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냉전 이후에 '문명'이 이데올로기를 대신할 새로운 대의 명분이될 것이라는 전망이 당시에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명의 충돌>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서구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진보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으며 복수의 다양한 문명들이 교류하고 경쟁하고 공존하고 화해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p100)... 범세계적으로 종교의 부활을 가져온 가장 명백하고 두드러지고 강력한 원인은 종교의 죽음을 야기할 것으로 예측되던 원인이었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후반부 세계를 휩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근대화 과정이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뿌리를 잃고 새로운 직업을 가지거나 실업자로 전전했다. 그들은 낯선 군중 속에 섞이고 새로운 관계틀에 노출되었다. 그들에게는 정체성의 새로운 뿌리가 필요했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102/329

서구는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이 국제질서와 안정에 기여하고 모든 국가의 이익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이것을 서구의 헤게모니 고수 전략으로 파악한다. 그것은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놓고 미국과 지역강국이 보이는 불안의 차이에도 반영된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이 한반도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202/329

다른 면 책의 의의를 찾자면, <문명의 충돌>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근대화 이후 급속하게 한국사회에 세력을 확장시킨 기독교,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 분석 등에서 우리는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이러한 장점과 함께 기독교의 영향으로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을 중국문화권에 편입시킨 저자의 구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문명간 충돌의 모습으로 들고 있는 사례가 사실은 지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은 장점에 뒤이은 비판점이 될 것이다.

서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국가 간 분쟁이 싹틀 소지가 많다. 가장 널리 인정되는 분쟁 위험 지역은 한반도와 중국이다. 그러나 이곳은 냉전의 유산이다. 이념 대립은 뚜렷한 감소 추세에 있다(p235)... 중국은 동아시아의 지배국이 되려고 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발전은 점점 중국 의존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급속한 성장에다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경제발전에 화교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늘고 있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점점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p246/329

부연하자면, 이슬람 문명 내에서 일어난 혼란과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9년 베르사유 체제의 산물이며, 남중국해와 한반도 문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1953년 판문점 체제의 결과라는 점에서 결국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 간 충돌'은 경제적 요인으로 생겨난 대립의 대의 명분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과거 20세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개념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점을 인식하고 <문명의 충돌>을 읽는다면, 문명 간의 대립만이 아닌 다른 중요한 갈등요소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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