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높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결단성에서, 지혜에서, 건강에서, 그리고 또 부유함에서이며, 그것도 절제되고 조심스럽게, 나를 위해 적합한 방식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자기 아래 몸을 굽히게 하는 일이 이렇게 편하고 맥없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온갖 즐거움의 적이다. 그것은 미끄러지는 것이지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자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는 뒷걸음질을 쳐야만, 시대와 일치하기보다는 불일치함으로써만, 비슷해지는 것보다는 달라짐으로써만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 때이다. 좋은 본보기들에서 배우는 일이 거의 없으니, 나는 나쁜 본보기들을 통해 배우는데 그런 경우가 일상적이다.

내 생각에 우리 정신의 가장 비옥하고 자연스러운 훈련은 대화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다른 어떤 행위보다 더 달콤한 경험이라고 여긴다. 바로 그 때문에 만일 지금 내가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듣고 말하는 능력을 잃느니 시각을 잃는 쪽을 택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 행운과 불운이야말로 두 가지 으뜸가는 힘이다. 인간의 지혜가 행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제 손으로 자기 일의 경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뻐기는 자의 기획은 공허하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우리의 지혜 자체도 또 우리의 궁리도 대부분 우연에 의해 이끌려 간다고 말이다. 나의 의지나 나의 추론은 때로 이렇게 때로 저렇게 흔들리며, 이런 동요는 많은 부분 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적의 칼에 달려드는 나머지 그의 일격이 원래보다 더 깊이 찌르게 도와주는 수도 있다. 예전에 내가 설전을 벌이는 중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반격이 내가 원했거나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정통으로 상대를 찌른 경우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길이를 생각하며] 말의 수를 채웠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무게로 받아들인 것이다.

좋은 노래를 한 곡 듣는다고 즉시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멋진 연설을 듣는다고 전장에서 훌륭한 전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무엇에든지 당신이 거기 손을 대려면 오랜 동안의 한결같은 훈련을 통한 도제 학습을 먼저 해야 하는 법이다.

지혜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고 불만족스럽고 두려운 상태로 만들어 두는 데 반해, 고집스러움과 무모함이 그 주인들을 기쁨과 자신감으로 채우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재앙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문이 막히면 음성과 표정이 바뀌며, 자신을 수습하는 대신 무례하게 화를 냄으로써 그들의 허약함과 초조함을 드러내고 만다. 장난스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약점이라는 비밀스런 심금(心琴)을 집어 뜯는 수가 있는데, [이 마음의 현악기는] 평상시에는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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