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그대가 "나는 거짓말을 한다."라고 말하고 그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 결론에 이르게 하는 어법, 논리, 힘 등은 앞의 언술과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창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각각의 존재는 다른 것들의 자질을 모두 자기 자질에 결부시켜 인식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질들을 확장하거나 줄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이다.

"민중은 자기를 해방시켜 줄 진리를 찾고 있는데, 그들의 종교는 그의 안녕을 위해 속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의 눈은 사물들을 제가 알아보는 방식으로밖엔 보지 못한다.

우리가 바라듯이 우리 영혼의 조건을 돋보이게 하려면 단순하고 순수한 천연 상태에서도 이미 영혼들은 모두 박식하다고 전제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육체 안으로 들어오기 전, 육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박식했을 것이다. 육체에서 나간 뒤에 그렇기를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영혼은 육체에 들어와서도 그 지식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플라톤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 각자는 그것이 틀린 말임을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조건을 위로해 주려고 늘 이런 모순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영혼은 필멸이거나 불멸이다. 필멸이면 고통을 모를 것이요, 불멸이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그들은 ‘더 나빠지면 어쩔 것인가?’ 하는 다른 가지는 절대 건드리지 않고, 사후에 닥쳐올지 모르는 고통에 대해서는 시인에게 맡겨 둔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좋은 패를 자기 것으로 갖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연장하려고 노심초사한다.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그것을 준비해 두었다. 신체의 보존을 위해서는 무덤이 있고, 이름의 보존을 위해서는 영광이 있다.

요컨대 고대인들의 정신이 지닌 자유와 대담성은 철학과 인간학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여러 분파를 만들어 냈고, 그 각각은 제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저마다의 판단과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살며, "고정되고 한정된 몇몇 견해에 매여 끌려가는 나머지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것들까지 옹호해야 할 판이 되었고"(키케로), 처세의 압박과 명령 때문에 교양을 쌓고, 학교들도 이젠 하나의 모델만 따르며, 동일한 교육, 한정된 학과밖엔 다루지 않게 된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화폐가 더 무겁고 값이 나가는지는 문제 삼지 않고, 각자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통용되는 바에 따라 그 값어치를 받아들입니다. 진정한 가치를 따지지 않고 통용 가치만 따지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값이 매겨집니다.

기초가 결여되면 그의 논증은 땅에 떨어진다. 토론과 탐구가 궁극의 목표로 삼는 것은 오직 원칙들이다. 그것들이 나아가는 길을 이 목표가 붙들어 주지 않으면 끝없는 불확실성에 빠질 것이다. "한 사물이 다른 것보다 더 이해되거나 덜 이해될 수는 없다. 모든 사물에는 각각 하나의 이해 방식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인간의 시선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깊은 심연에 잠겨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그럼 직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들의 판단력이 이런 징후보다 저런 징후에 기우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자기네 판단력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금하면서도 그런 경향은 인정했던 것이다.

사물이 제 모습, 제 본질 그대로 우리 안에 깃들지 않으며 제 힘과 권위로 거기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한다. 만일 그 자체로 들어온다면 우리 모두가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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