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우리 필요에 맞게 사용하고 환상적인 정밀도로 그 각각을 측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공간과 시간이라는 물리량을 그 자체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간과 시간은 실재의 근본적인 배경을 형성하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순환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개념들은 공간과 시간을 기준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공간과 시간은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최근 물리학에서 일반상대론과 양자역학을 통일하려는 시도(끈 이론, 루프 양자 중력, 다차원 브레인branes, 양자화된 시공간)는 결국 특이점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는 특이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무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필자는 결코 절대라고 말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 앞의 주장은 창조자의 존재를 분명하게 부정하지는 않지만 무로부터 우주의 창조라는 유신론적 개념이 옹호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무가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 중 하나다. 현대 물리학은 이 질문을 뒤집는다. 아마도 이런 질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우주에서 관찰되는 모든 물리적 과정은 ‘무로부터의 창조’라기보다는 물질과 에너지의 재배열이나 전환이다. 반면 우주의 창조는 지금까지 연구된 물리적 과정과는 다르며, 따라서 그것이 인과적 설명의 대상이라고 믿을 어떤 근거도 없다.

우주론적 논증에 따라 유신론적 신을 도입하는 일은 단지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합리주의자는 유신론자의 ‘신’을 선험적 의도나 인격이 아닌 ‘물리학의 원리’로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크레이그의 논증은 우주의 창조 과정에 신이 어떻게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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