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문명이라는 발상은 다른 문명에서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서구가 보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비서구는 서구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서구가 미디어의 세계적 확산을 지구의 부드러운 통합이라고 선전할 때 비서구인은 거기서 사악한 서구 제국주의를 본다. 설령 비서구인이 세계를 하나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위기감이 스며 있다.

사회적 다원주의는 정치 집단을 낳았고 귀족, 성직자, 상인 등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 같은 기구를 낳았다. 이 기구들이 제시한 대의 형태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 민주주의 제도로 발전했다.

비서구 사회가 서구 문화의 실질적 요소를 흡수하며 근대화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구화의 속도는 하락하고 고유문화가 소생한다.

결국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서구의 가치·제도·관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왔다. 서구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구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 요소에 비하면, 근대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요소는 극히 작은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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