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당들은 반유대주의와 달리 이슬람 혐오가 용인된다는 것을 안다(실제로 일부 정당은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 때문에 뜻밖에 손을 맞잡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주요한 성과는 의제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반수가 아니라 ‘점잖은’ 당들을 겁줄 만큼 필요한 표만 얻으면 된다.
오늘날 서구의 외국인 혐오는 일정한 형태의 민주적 정당성에 의지한다. 주요한 변화나 새로운 현상이 모두 그러하듯, 외국인 혐오의 부상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세계화와 그로 인한 대규모 탈산업화가 서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가령 독일)보다 몇몇 나라(영국 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인구 고령화에 따라 연금, 의료, 사회적 돌봄 지출이 많아지는 탓에 과세 수준이 높아지거나 긴축 정책이 시행되고, 또는 양자가 결합된다.
정치인들은 흔히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질적인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빈곤을 줄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빈곤 감소란 빈곤을 낳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공공 자금을 지출하는 것(또는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신노동당이 이룬 이 업적은 나중에 원상복구되었다.
소멸한 ‘낡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은 1945년 이후 30년간 서구를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합쳐놓은 체제를 가리키는 독일어 표현이다. 탄탄한 경제 성장과 나란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확대와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가 이루어진 복지자본주의caring capitalism를 말한다.
부유한 서구 전체에서 복지국가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도와줄 가치도 없는 빈민’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은 점차 마지못해 국가의 복지 혜택에 의지해 삶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미국(푸드뱅크가 시작된 나라),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영국 같은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구걸인과 홈리스의 수가 늘어나고 푸드뱅크 사용이 널리 확산되었다. 자유시장의 혜택에 관한 온갖 선전이 넘쳐났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시장은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지 않으며, 세계화가 모든, 아니 대다수 시민을 위해 작동하는 것을 보장해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여전히 소득과 부와 교육 수준에서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체제의 삶보다 선진 자본주의의 삶을 더 낫게 만들 만큼 충분히 응집력이 있는 민족공동체를 창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처럼 거의 일반화된 통합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20년간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약화시킴으로써 전후戰後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의 위기가 정치의 위기로 바뀌고 있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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