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독단적이고 상대적이고 문화에 구속된 것이 아니다. 도덕은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도덕 감각을 갖고 태어나며 도덕 감정들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나침반이 된다. 동시에 이러한 도덕 감정들은 그 지역의 문화, 관습, 양육의 영향을 받는다. 본성은 약속과 사회적 의무를 어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지만 양육이 그 죄책감의 수위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따라서 도덕은 ‘저 밖’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재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 인간 본성의 일부로 존재한다.
우리가 도덕적 진보의 증거들과 그러한 진보를 가져온 여러 원인들을 살펴보는 동안 기억해둘 것은, 우리가 밝혀낸 도덕적 진보의 원인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진보라는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이 왜 우리가 애당초 도덕의 영향권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지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과거 몇 세기의 도덕적 발전은 대부분 종교적 힘이 아니라 세속적 힘의 결과였으며,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 출현한 이 많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과 이성이라는 말을 아주 폭넓게, "일련의 논증들을 통해 추론한 다음 경험적 검증을 통해 그 결론이 참임을 확인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나아가 나는 도덕의 궤적이 단지 정의만이 아니라 진리와 자유를 향해 구부러지며,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들의 대부분은 더 세속적 형태의 통치와 정치, 법과 법학, 도덕적 추론과 윤리적 분석을 향해 사회가 이동한 결과였음을 증명할 것이다.
내 생각에 셔머와 나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셔머는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경험적 검증’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명시적으로 말했지만, 그가 의미하는 바의 과학과 그것의 기여는 결국 이성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반면 나는 과학, 증거, 실험, 관찰, 모델링이 앞서 논했던 도덕적 관점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항상 의구심을 지녀왔다. 나는 그것이 과학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셔머의 말대로 각 개인이 어떻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것이지 도덕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도덕의 궤적이 직감이나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인도된다는 주장에는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철학자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도덕의 궤적이 모든 측면에서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가 수집한 과학적 증거에 의해 인도되어 왔고 인도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나는 어떤 연구도 셔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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