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중등학교 당국과 일본인 교사들은 학생 선발과정부터 시작해학생 지도과정, 학생 평가과정, 퇴학 처분과정, 그리고 학생의 취업과정에 이르기까지 민족을 차별하였다. 이 점을 충남 강경 소재 중등 실업학교인 강경상업학교(이하 강상으로 줄임)의 사례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통해 밝혔다. - P246
이런 점에서 경제 사유 중퇴 양상의 민족 간차이는 관행적 민족차별과 관련성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한·일 민족 간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의해 초래된 결과의 차별, 즉 구조적민족차별의 성격을 지닌다 하겠다. 민족차별은 학생 선발·지도·평가·퇴학 처분 과정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강상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진로를 모색하고 취업하는과정에서도 민족차별이 있었다. - P249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취업과정에서 민족차별이 자행되는 가운데서도 일제 말기 강상의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졸업생 중 일부는 일제의 전쟁 총동원정책과 일본자본의 대륙 팽창이란 전시상황을 활용해 성장해나간 것이다. 선호도 높은 분야에 취업하는 한국인 졸업생이 증가하고, 그 취업처도 다변화하고, 하급 실무자에서 중간 관리자로 승진하는 한국인 졸업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직위 승진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다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된다. - P250
교사 배척 맹휴에서 드러난 관행적 민족차별의 방식은 대체로 세 가지였다. 한국 민족과 한국인을 일방적으로 모욕하는 방식, 한국과 일본의 비교를 통해 한국 민족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방식,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을 차별 대우하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관행적 민족차별에는 교사의 전제와 독선과 억압과 폭력이 수반되는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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