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논쟁에서는 흔히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인용된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은 법칙이라기보다 관찰의 결과일 뿐이다. 또한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것의 성능(속도, 용량 등)이 18개월마다 두 배가 되는 법칙이라고 잘못 해석된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복잡성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계산주의의 기본 전략은 자연어natural language라는 비형식적인 상징들informal symbol을 형식적 상징으로 다루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의 초창기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프로그래밍 기법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다뤄야 할 자연어는 사실상 사고 언어가 아니며 형식적인 상징으로도 다룰 수 없다

많은 인공지능 연구자가 ‘강한 인공지능’이 그들의 실제 목표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들은 인간의 뇌가 기계 장치의 사고 모델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을 ‘들을’ 수 있다. 사람은 이 목소리를 ‘자아’라고 부른다. (이러한 추측은 자기동일성에 대한 물리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신뢰할 수 없는 이 내면의 소리를 자기 자신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 이 소리는 ‘자기’가 아니다. 언어 이전에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언어적 사고와 심상적 사고는 일정부분 이 과정에서 유래한다.)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그 소리는 옳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으며, 정확하지도 않다. 언어 이전의 과정은 전적으로 감각적 경험 그리고 감정을 지표로 삼는 신뢰하기 어려운 내적 상태들과 관련을 맺고 작동한다.

어떤 부류든 창조론자는 인격신을 믿고 과학과 종교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 (고전적 창조론과 신창조론 양쪽 진영에서 나오는 일련의 간행물로 볼 때 그렇게 보인다.) 고전적 창조론과 신창조론의 주요 차이점은 후자가 더 철학적으로 세련되고, 과학적 용어와 유사과학의 개념을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창조론자들은 ‘지나치게 지적’이라고 여겨지는 탓에 고전적 창조론자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정치에 대한 이해도는 고전적 창조론자보다 훨씬 높다.

그림1의 두 좌표축은 믿음의 대상이 되는 신의 인격성 정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과 과학이 밝혀낸 세계 간의 충돌 정도를 나타낸다. 즉, 이 도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 그리고 과학-종교 논쟁의 주요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련의 사고 영역areas of thinking을 대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당신이 그림1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이 세계에서의 당신의 삶의 궤적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질 것이다. 이 세상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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