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봉쇄는 영국 무역을 겨냥한 광범위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조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륙 체제는 유럽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제도적·경제적 조직에 대한 나폴레옹의 관념을 반영했다. 물론 나폴레옹이 생각하는 새로운 유럽 조직에서 프랑스는 최상의 경제적 우위를 누릴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동일한 게 아니었다. 대륙 봉쇄는 해상 경쟁자를 약화시키고자 육상 강국이 실행하는 경제 정책이었다. 나폴레옹의 칙령은 해상에서 영국의 우위와 영국 항구를 상대로 고전적인 봉쇄조치를 시행할 수 없는 프랑스 해군의 능력 부족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반면에 대륙 체제는 개념적으로 볼 때 유럽에서 새로운 정치적·경제적 실체를 창출하는 것이었고 대륙에 훨씬 더 큰 구조조정을 수반했다.

비록 나폴레옹 제국은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나폴레옹은 언제나 대륙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품고 있었다. "나는 하나의 유럽 체제, 유럽 법전, 유럽 사법부를 창설하고 싶었다. 유럽에는 오로지 하나의 국민만이 있을 것이었다"라고 그는 나중에 유배 생활 중에 주장했다. 하지만 훗날 여러 세대의 작가와 저자들에 의해 대중화된 이 ‘유럽 합중국’이라는 비전은 유럽연합의 초기 판본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회원국들 간의 평등이나 자유무역과 [상품과 사람의] 제한 없는 이동이라는 요건을 갖춘 경제 연합의 창설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이해관계를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고─"프랑스를 최우선으로"라고 그가 지적했듯이─상품의 이동을 제한하는 옛 관세를 부활시킴으로써 프랑스의 상업을 보호할 계층화된 경제체제를 구상했다.

나폴레옹의 실패 원인은 이 체제를 충분히 긴 기간 동안 철저하게 유지하지 못한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 요인들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째, 에스파냐에서 나폴레옹의 패착과 더 중요하게도 러시아에서의 패착은 이 체제에 결정타를 가했다. 둘째, 영국의 국가적·경제적 안보는 봉쇄에 대처해 스스로를 조정한 영국 재정 시스템의 유연성 덕분에 진정으로 위협받은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해군은 영국의 제해권을 위협하거나 유럽 대륙에서 영국 상품을 배제할 수 있는 봉쇄를 실효적으로 강제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대륙 봉쇄 체제가 실패한 원인은 그 내부적 모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사실 영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대단히 높고 프랑스는 한마디로 영국을 대체할 능력이 없으니 영국 상품이 유럽 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더욱이 나폴레옹의 정책들은 그 정책들을 견디도록 강요받은 이들로부터 자연히 커다란 불만과 분노를 자아냈다. 전에는 번영을 누렸던 많은 지역들의 경제, 특히 네덜란드와 한자 도시들의 대형 상업 중심지들은 봉쇄로 인한 피해가 심각했다

더욱이 틸지트 조약 체결 이후로 15개월 동안 유럽 지정학에서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터였다. 사실 틸지트의 초창기 희열은 증발해버렸고 양측에는 이제 차가운 현실주의가 들어섰다. 러시아는 분명히 나폴레옹과의 동맹의 장단점을 따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나폴레옹대로 영국과의 대결에서 여전히 프랑스의 중요한 맹방인 오스만 제국과 관련해 러시아에 양보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1808~1809년의 사건들은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전쟁의 경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나폴레옹의 전역 이후에 프랑스는 에스파냐 중부와 북부 대부분을 다시 장악했지만 많은 지역들에서 계속해서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카탈루냐와 안달루시아, 에스트레마두라 일부 지역들은 프랑스군에 강력히 저항했고 도시들의 용감한 방어는 에스파냐 저항 세력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을 뿐이었다.

이것은 소름 끼치도록 비인간적인 열성과 총체성을 띤 전쟁, 〈전쟁의 참상Los desastres de la guerra〉이란 제목의 고야의 잊을 수 없는 연작 판화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극복할 수 없는 난관들을 제기했다. 프랑스는 개혁, 점령, 협력, 억압을 조합한 전통적인 수법에 의존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이 수법이 통했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그들은 "프랑스가 에스파냐를 피 흘리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프랑스를 더 피 흘리게 하면서" 전쟁의 끔찍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된 상대와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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