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제일 큰 죄인은 누구일까.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진보 세력은 수구 세력이 뉴라이트의 도움을 받아 근현대사 쟁점에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놨는데도 더 이상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다.
1980년대에 그렇게 현대사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 가운데 몇이나 해방과 광복, 광복절과 건국절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해방을 어떻게 맞았는지를 여러 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았다는 것이다. 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게 아니다. 끊임없이 항일 투쟁을 해온 분들이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맞았다.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처럼 주체적으로 해방을 맞은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점을 적당히 넘겨서는 안 된다.

정리하면 한국은 해방을 통해 시민 혁명이자 정치적 혁명, 사회적 혁명, 경제적 혁명, 문화적 혁명을 맞았다. 그야말로 유사 이래 이렇게 큰 변화를 순식간에, 한꺼번에 맞이하게 됐다는 것, 이건 정말 대단한 거였다. 젊은 사람들은 ‘공기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해방도 자연스럽게 왔네’,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국내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면서 싸워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게 됐는가와 연관시켜서 해방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비롯한 기본적 자유는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획득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해방된 바로 그날부터 그런 자유를 누리지 않았나.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를 인수해 우리 스스로 매일신보를 내고 그랬다. 이게 나중에 서울신문으로 바뀌는 거다. 미국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 게 아니다.

건준은 초기에 좌우 연합적인 성격이 대단히 강했다. 해방 이틀 후인?1945년?8월?17일 간부를 발표하는데, 그때?7명의 간부 명단을 보면 안재홍 부위원장 등?4명이 우파거나 중도 우파다. 좌파나 중도 좌파는?3명뿐이다. 여운형은 중도 좌파다. 그만큼 배려를 많이 하면서 일했다.

토지를 무상 몰수, 무상 분배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아, 한민당 중진이 이렇게까지 발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식민지 지주제 폐해가 컸다. 거기에 한국인의 정의감까지 가세해서 ‘토지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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