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버스탬은 전후 한국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1945~48년의 미군정을 단 한 문장으로 언급한다. 그 전쟁의 잔혹한 학살과 미국의 소이탄 공습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대신 한국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였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는  한 무리의 지도자를 가진 하찮은 나라였다. <콜디스트 윈터>는 미국 특유의 통속적인 장르에서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 이 책이 설명하는 전쟁은 한국이나 그 역사에 관해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고작 두세 명의 한국인을 언급하며, 한국인과 중국인이 훨씬 더 많이 참여했던 전쟁에서 미국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선한 편과 악한 편에 관한 1950년대의 고정관념들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118


 데이비드 핼버스탬 (David Halberstam, 1934 ~ 2007)의 <콜디스트 윈터 The Coldest Winter>에 대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미국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한국전쟁'이며, 한국전쟁에 정작 한국은 없다는 커밍스의 비판은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지만, <콜디스트 윈터>에는 다른 한국전쟁 관련 책들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비판이 지나친 부분이 있어 보인다. 


 한국전쟁에는 단층선(斷層線)이 있었다. 단층선의 한 면은 야전부대가 직면하는 전장의 위험과 현실의 세계고, 다른 면은 안일한 명령만 쏟아내는 도쿄 사령부에 있는 환영의 세계였다. 단층선은 군단과 사단 사이에도 있었다. 군단은 도쿄 사령부에서 스며 나오는 맥아더 장군의 열의를 느끼고, 사단은 적의 공격에 노출된 연대와 예하 부대의 취약성을 느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76/1912


 <콜드스트 윈터>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의 단층을 말한다. 이 단층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틈이 아니라, 미군(美軍)을 구분하는 선이다. 이 선의 한 편에는 장진호(長津湖)에서 혹독한 추위와 중공군과 싸워야 했던 야전군인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워싱턴 행정부와 싸우는 정치군인,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 ~ 1964)가 위치한다. 도쿄 책상 위에서 전황을 내려다보며 아시아의 맹주로 처신하는 맥아더와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 1884 ~ 1972)의 대립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영웅으로 알려진 맥아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콜디스트 윈터>는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트루먼과 맥아더는 동일한 선상에서 같은 목표를 바라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국가 자산을 투입해야 하는지 생각이 전혀 달랐다. 1950년 6월 25일부로 대통령과 장군으로서 이들의 삶이 함께 엮였다. 미국 역사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트루먼은 맥아더를 통제하지 못해 대통령의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맥아더는 대통령직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적으로 자신의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342/1912


 사실 여러 해 동안 맥아더가 자신의 추종자들을 현혹했던 한 가지 비법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입장이나 대의명분에 도움이 될 때에만 진실을 인정했고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에 방해가 될 때에는 가차 없이 저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그 점이 맥아더의 발목을 잡는 덫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옳다는 식이었지만 막상 진실과 견주기 시작하자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666/1912


 다만, 커밍스의 관점에서처럼 한국전쟁을 내전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콜디스트 윈터>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빠진 책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의 성격을 내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콭디스트 윈터>의 관점은  그와 다르다.


 기억해야 할 점은 한국전쟁이 내전이었으며, 진정한 비극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순전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었다면 식민주의와 민족 분단, 외세 개입으로 초래된 엄청난 긴장을 해결했을지도 모른다. 비극은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전 상태로 돌아갔을 뿐이며, 그저 휴전을 통해 평화를 유지했을 뿐이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72


 <콜디스트 윈터>에서 저자는 한국 전쟁을 다소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미국과 서구 세계에게 한국전쟁은 '축소된 세계대전'인 반면, 북한, 중국, 소련의 관점에서는 '내전'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는 전선이 고착상태에 빠진 이후 마무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미국과 서구 세계에서 한국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 일방적으로 공격한 '침공'이었다. 때문에 예전에 히틀러의 침공을 막지 못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던 쓰라린 역사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과 소련 그리고 북한에게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쟁을 시작한 시점에서는 1945년에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국경처럼 그은 38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몇 달 후 미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하면서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들의 관점에서 6월 25일에 자행한 북한의 남침은 중국에서는 막 끝났지만 인도차이나에서는 진행 중인 것과 동일한 '끝나지 않은 내전'에 불과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44/1912


 분단 상황이 사회와 문화마저 분열시켰으며 남과 북 어느 쪽이든 모두 비통한 시대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엄청난 내부 분열을 불러와 한국전쟁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한국전쟁은 단순히 국경을 넘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도발 이상의 의미였다.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십수 년 동안 쌓였던 내부 분열과 모순 그리고 오랜 정치 갈등이 터져 나온 위험한 상황이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92/1912


 <콜디스트 윈터>는 한국전쟁에서 휘브리스(hybris)에 빠진 지도자들과 이들이 저지른 실수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마치 점수만 보면 8-7 케네디 스코어로 진행되는 야구경기에서 막상 내용을 놓고보면 끝없는 실수로 벌어진 타격전 하이라이트를 보는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부끄러운 실수들이 당사자들에게 한국전쟁을 잊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전쟁은 어떤 식이든 일종의 계산 착오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양측 군대가 내린 모든 결정이 하나같이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 우선 미국은 극동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행동을 개시하도록 자극했다. 결국 소련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략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이번 전쟁에 발을 디디면서 인민군의 저력을 무척 과소평가했으며 각지에서 미군의 승전 나팔소리가 연이어 들릴 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 후에는 중공군의 경고 신호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38선 이북으로 밀고 올라가는 무모함을 보이기도 했다. _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 p1713/1912


 그렇지만, 잊혀진 전쟁이 남긴 유산은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냉전 이후 경찰국가 미국의 역할을 결정지었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1953년 판문점 체제의 영향이 동아시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후 유럽 질서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세계전쟁으로서의 영향력을 한국전쟁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판문점 체제는,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추구한 자유주의적 평화 기획이 귀결된 궁극적인 제도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판문점 체제는 중국의 개입 이후 부과된 정치적 압력하에서 한국 문제의 궁극적인 정치적 해결을 유예시킨 군사 정전 체제였다. 그리고 판문점 체제는 미국과 이승만의 협상의 산물로서, 한미 군사 동맹 체제 아래에서 경제 발전의 모델을 전시하려는 아이젠하워 근대화 정책의 대표 사례였다. 좀 더 일반화하자면, 판문점 체제는 칸트식 초국적 법치가 지향했던 보편적 영구 평화나 보편적 정의와는 거리가 먼, 특수한 상황에서의 안보, 특수한 동맹 체제하에서의 경제 발전이라는 매우 분명한 홉스적 기획의 산물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_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 p843/1282 


 독일의 재무장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스탈린의 예기치 못한 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중한 자원을 재무장에 쓰기를 원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다. 무방비 상태의 대결 대신으로 중립이 지닌 매력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똑같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합리적인 반사실적 가정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뻔했기 때문이다) 실로 최근 유럽사의 윤곽은 매우 달라 보였을 것이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2005 1>, p207/706


 그렇지만, 한국전쟁이 잊혀져서는 안될 이유는 이러한 세계적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현재까지 분단체제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도 아니다. 지도층들의  실수와 대립으로 결정된 전쟁과 국토의 양극단까지 전선이 움직이면서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잊혀진 전쟁' 뒤에서 조용히 묻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노근리 사건과도 같은 수많은 희생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현실 속에서 적어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이러한 수많은 단층을 가진 복합적인 성격의 전쟁인 한국전쟁이 왜 발생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미국인이 가장 모르는 것은 그 전쟁이 섬뜩하리만큼 지저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간인 학살의 더러운 역사가 끼어 있는데, 북한을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로 보는 미국의 생각과 달리, 그 최악의 범죄자는 겉보기에 명백히 민주주의 체제였던 동맹국 남한이었다. 영국인 저자 맥스 헤이스팅스는 공산주의자들의 잔학 행위 때문에 국제연합이 한국에 "오늘날까지 지속된 도덕적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썼다. 그렇다면 남한의 잔학 행위는? 오늘날 역사가들은 남한의 잔학 행위가 훨씬 더 많았음을 알고 있다. _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