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시기 지중해 지역에서 사망 원인은 주로 장(腸)과 관련된 질병이었다. 그래서 사망률이 여름에 집중되었다. 더 춥고 비가 더 많이 내리는 겨울 날씨는 인구의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다. 구체적으로 증거 자료를 수집한 사람은 없겠지만, 기원전 800~500년 이베리아반도에서 서부 이란 지역까지 거의 어디서나 인구가 성장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원전 제천년기 말엽에 이르러 지중해 연안의 인구는 거의 2배로 늘어났다. - P101
그중 가장 중요한 주제는 규모와 지속성의 문제다. 식량 생산에서부터 도시 내 다양한 공동체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관계에 이르기까지도시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 일시적 혼란의 빈도와 강도가 모두 포함된다. 내부적으로 권력 구조에 대한 도전이 생겼을 때는 (인구가 성장하거나 감소하거나 분산되는 등의 급격한 인구 변화가 나타날 테고, 이는 기존 조직의 안정성에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급속한 변화란 것이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과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은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도시의 다양한 구조에 따라 그러한 변화에 더 유리하게 (혹은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사례 비교 연구를 통해 검토해야 할 주제다. - P159
분명 뉴 카호키아는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였다. 도시 중심 구역에는다양한 요소들이 조직화되어 있었고, 주거지의 배열은 기준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꾀했으며, 장례 행사 장면은 세계의 다른 초기 도시들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결국 카호키아의 역사는 새롭게 정착하고 조직화된 토착민과 이주민 가족에 의한 옥수수 생산 확장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카호키아의 유산은, 혹은 유산의 부재는 아마도 건축 재료 때문일 수도 있다. - P260
도시국가(아슈르Assur)에서 아시리아(Assyria) 제국으로 발전하면서주민의 생활에는 뚜렷한 변화가 생겨났고, 도시에는 왕국의 수도라는성격이 부가되었다. 예전의 전통적인 수도 아슈르는 더 이상 왕국의 정부 소재지가 아니게 되었고, 몇몇 왕들이 아시리아 핵심 지대에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이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인구 압력이 높아졌고, 경제가 성장했으며, 안전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리고 왕국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는 시각적 수요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못지않은 아시리아 왕들의 욕망도 있었다. 그들은 오랜 라이벌이었던 바빌론(Babylon) 왕국을 규모나 화려함, 그리고 종교적 명성에서 능가하고자 했다. 아슈르 사원이 제국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중심으로 남아 있는 한, 제국을 통치하는 정부의 소재지는 왕에 따라 또한 필요에 따라 옮겨 다녀도 무방한 일이었다. - P318
놀랍게도 로마에 관한 기존 이미지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다른 제국과 확연히 달랐던 로마의 특색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적·문화적 포용이었다. 로마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가지고 있었다. 그 대신 팽창기의 로마인은 사회정치적 입장과 시민의지위에 주로 관심을 두었는데, 그것이 제국 포함 여부의 핵심이었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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