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중의 취미에 아부하지 않거나 익숙한 상투어를 쓰지 않아서 조금만 대담한 문체를 사용해도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독창적인 작가들이 있는데, 스완이 베르뒤랭 씨의 노여움을 산 것도 같은 이치였다. 이들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스완에게서도, 그를 뱃속 검은 사람으로 믿게 한 것은 바로 그가 쓰는 언어의 새로움이었다.
오데트의 존재로 인한 동요와 얼마 전부터 그를 떠나지 않는 그 열기 어린 거북함은, 자연 감상에 필수 배경인 고요와 안락을 빼앗고 있었다.
오데트가 많은 남자들 눈에 매력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그들이 그녀 육체에 느끼는 매력 탓에 그 역시 그녀 마음 구석구석까지도 완전히 지배하고 싶다는 고통스러운 욕구를 느꼈다.
그녀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의 크기를 알리고자 애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은 그의 사랑이 지속되는 한 상처 받기 쉬운 그를, 질투의 발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스완은 갑자기 심한 아픔을 느꼈다. 마치 육체의 아픔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완의 생각은 그 아픔을 줄일 수 없었다. 아니, 차라리 단순한 육체의 아픔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생각과는 무관해서 생각을 아픔에 고정하고 아픔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아픔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 아픔은 생각 자체였으므로 단지 기억만 떠올려도 되살아났다.
그녀는 창문 두드리는 소리를 분명 들었던 것이다. 스완은 이 말에 한 조각 정확한 사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불시에 기습당한 거짓말쟁이가 꾸며 내야 하는 거짓말에 어떤 사실을 집어넣고 거짓말과 함께 어우러지게 하면, 아마도 ‘진실’인 듯 보일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하는 그런 것이다.
오데트가 흔히 하던 거짓말은 그렇게 결백하지 않았고, 만일 탄로나면 이런저런 친구와의 관계에서 엄청난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을 숨기는 데 활용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거짓말을 할 때면, 겁에 질려 자신을 방어할 만큼 충분히 무장되지 않았다고 느꼈고, 또 성공을 확신할 수도 없었으므로 잠을 자지 못한 몇몇 어린애들처럼 피로해져서는 그만 울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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