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해하는 ‘기득권층’의 의미는 이렇다. 오늘날 기득권층은 언제나 그렇듯이 권력있는 자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성인 인구의 거의 전체가 투표권을 가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지킬 필요가 있다. 기득권층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권력 집단의 시도를 대표한다. 이런 점에서, 기득권층은 권력자 집단을 더 광범위한 인구로부터 보호하려는 방화벽으로 볼 수도 있다.
자주 ‘신자유주의’로 묘사되곤 하는 이 이데올로기는 소위 ‘자유시장’이라는 신념을 토대로 삼는다. 공공자산을 되도록 많이 영리사업으로 전환하고, 이전에 국가가 경제에서 담당해온 역할에 어느 정도 반대하거나 혹은 그런 국가개입을 적대시하며, 사익에 부과되는 세금의 감면을 지지하고, 어떤 형태이건 현 상태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조직을 격퇴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자주 ‘자유’, 특히 ‘경제적 자유’라는 명목으로 합리화되며, 자신을 개인주의의 언어로 방어한다. 기득권층은 이것이 마치 날씨처럼 당연한 것이자 삶의 진실이라고 여긴다.
기득권층은 그들이 받아야 할 철저한 감시를 받지 않는다. 결국, 권력있는 자들의 행동을 조명하는 건 언론의 책무다. 그러나 언론은 기득권층의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다. 언론 소유주들과 기득권층은 같은 전제와 신조를 공유한다. 권력자를 조명하는 대신, 언론인과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실업수당을 받는 실업자나 다른 국가보조금 청구인, 이민자, 공공부문 노동자?이들은 비난조의 폭로나 심지어 명백한 비방에 직면한 집단이다. 이런 힘없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실제로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의 방향을 너무나 편리하게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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