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오해에 둘러싸여 살아야 했다. 짧은 생애 동안 민중도, 적대자도, 그리고 제자들 마저도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예수에게 걸려고 했다.  예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중의 기대 속에서 고독했다. 서민들은 그에게서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효과를 추구했고, 대중은 로마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유다를 ‘하느님 나라‘로 회복시킬 지상적인 메시아로 그를 내세우려 했다. 이러한 기대와 흥분은 한때 갈릴래아의봄이라는 열광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지만, 예수에게 지상적인 메시아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예수로부터 떠나갔다. 예수의 비극적인 십자가상의 죽음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상이 내가 쓴 『예수의 생애』의 줄거리이다.  - P7

인간이 만일 현대인처럼 고독을 장난스럽게 여기지 않고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면, 그래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면 그의 영혼은 반드시 어떤 존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실망한 사람은 사랑을  배신하지 않을 존재를 찾을 것이고,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줄 이가 없어 절망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이해해줄 그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그것은 감상도 어리광도 아니며, 다른 사람에 대한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인간은 반드시 그러한 존재를 영원한 동반자를 계속 찾을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인간의 간절한 기대에 그 자신의 생전에도 사후에도 답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역사 속에서 많은 죄를 범했고 그리스도교 역시 때로는 과오를 범했지만, 인간이 계속해서 예수를 찾는 것은 그때문이다.
- P250

사울이 볼 때, 신자들은 예수라고 불리는 하찮은 남자를 주님으로 섬기며 그의 재림을 믿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라고 불리는 남자는 십자가형을 당한 자로, 사울이 알고있는 율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린 자는 모두 하느님에게 저주받은 자이다. 하느님에게 저주받은 그를 주님으로 섬기는 것은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율법을 부정한 이들이 이렇듯 생생한 구원의 희망을 지닐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휩싸인 사울은 ‘율법인가, 예수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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