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에 독자들은 텍스트를 변조시키고, 기대하고 있거나 몰두하고 있는 관심사를 텍스트에 끼워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텍스트 자체는 독자가 자신의 뜻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유사한 조어(造語)를 제공함으로써 잘못 읽기에 유리한 조건을 줄 뿐이다. 특히 교정되지 않은 눈으로 피상적인 훑어보기를 할 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러한 환상의 가능성을 쉽게 얻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환상의 필연적인 조건은 아니다.

독자의 직업이나 현재 처해 있는 상황 또한 잘못 읽기의 결과를 규정한다. 최근 자신의 뛰어난 연구 결과를 가지고 동료들과 논쟁하고 있는 문헌학자는 장기(奬棋) 전략 Schachstrategie을 언어 전략 Sprachstrategie로 잘못 읽는다.

우리는 또한 쓰기와 베끼기를 할 때 동일한 단어가 매우 빈번하게 반복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만일 작가가 자신이 이미 쓴 단어를 또 반복한다면, 이는 아마도 그가 그 단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의지의 방해 기능은 계속해서 관념들의 흐름과 분절 운동을 조화시키려는 쪽으로 작용한다.

물건을 〈잘못 놓는 것〉은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가를 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문자와 책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찾는 것을 단번에 들어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질서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질서다

우리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관념들에 관한 이러한 종류의 기본적인 방어 노력을 히스테리 증상을 이루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 방어 노력은 고통 자극이 일어났을 때의 도피 반사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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