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예가 돌아가자 황제는 중사(中使)를 파견하여 물었다. "어떻게 하여야 덕을 닦는 것이오?"
조연예가 대답하였다. "청컨대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읽고 이를 본받으십시오."

황제가 총애하는 경(耿)부인을 후(后)로 삼으려고 하자 양빈은 너무 빠른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부인이 죽자 황제는 후(后)의 예(禮)로써 그를 장사 지내려고 하였지만 양빈은 다시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황제의 나이가 더욱 장성해가자 대신들에게 통제되는 것을 싫어하였다. 양빈과 사홍조가 일찍이 황제 앞에서 일을 논의하였는데, 황제가 말하였다.
"그것을 살펴 도모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말이 있게 하지 마시오." 양빈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다만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신(臣)들이 있습니다."
황제는 평정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쌓였는데,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틈을 이용하여 황제에게 그를 참소하여 말하였다. "양빈 등이 오로지 방자하니 끝내는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황제는 이 말을 믿었다.

유수(劉銖)와 이홍건(李洪建) 그리고 그 무리들을 모두 저자에서 효수(梟首)하였으나 그 집안사람들을 사면하였다. 곽위가 공경들에게 말하였다. "유수가 우리 집안사람을 도륙하였다 하여 내가 그 집안사람들을 도륙한다면 원수 짓는 일이 반복되니 어떻게 끝이 있겠는가?" 이로부터 몇몇 집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양빈(楊?)이 추밀사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니 황제는 중사(中使)를 파견하여 그것을 중지하도록 유시(諭示)하였다. 선휘북원사(宣徽北院使) 오건유(吳虔裕)가 옆에 있다가 말하였다. "추밀(樞密)이란 중요한 자리이어서 오래 머물게 하기는 곤란하며 마땅히 뒤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꾸어 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하니, 상공(相公)이 이를 사직하는 것은 옳습니다."

사홍조가 또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긴 창과 큰 칼에 있는 것인데, 어찌 털로 만든 송곳을 쓰겠소?" 왕장(王章, 삼사사)이 말하였다.
"털로 만든 송곳이 없다면 재부(財富)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소?" 이로부터 장군과 재상은 비로소 틈이 생겼다.

경자일(3일)에 곽위(郭威)가 출행하겠다고 말하면서 황제에게 말하였다. "태후는 먼저 돌아가신 황제를 좇으신 것이 오래 되어서 천하의 일을 많이 경험하셨고, 폐하께서는 춘추로 보면 건장하신 나이시니 어떤 일이 있으면 의당 그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를 시행하십시오. 충성스럽고 곧은 사람을 친하고 가까이 하고,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을 내쫓고 멀리하며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서 마땅히 밝게 살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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